글로벌 반도체 업종의 상승세가 꺾이면서 반도체주 편중이 심한 국내 증시의 변동성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현지 시각 28일 뉴욕 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는 전 거래일 대비 3.58% 하락했다.

18거래일 연속 상승 행진을 멈추고 27일에 이어 이틀째 약세를 기록했다. SOX는 이달 고점 기준 38.6% 폭등했는데, 이는 닷컴 버블 붕괴 직전인 2000년 2월(50.4%)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코스피가 장중 6750선까지 치솟았지만 하락 전환한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뉴스1

급등 이후 조정 국면에 진입한 배경에는 AI 투자가 과연 돈이 되느냐는 근원적인 의구심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픈AI가 신규 사용자 수와 매출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며, 막대한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AI 투자 사이클의 지속 가능성에 균열이 가면서 시장의 매수 심리도 급격히 얼어붙은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반도체 의존도가 절대적인 국내 증시에 치명적이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의 등락에 따라 코스피 지수 전체가 요동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업종에서도 과열을 경고하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최근 130만원선을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22만원대 박스권에 갇히며 상대적으로 무거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7일 BNK투자증권은 이례적으로 SK하이닉스(000660)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하향 조정했다. 증권가에서 SK하이닉스에 대해 투자 의견 하향 보고서를 낸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추론 인공지능(AI) 사이클은 후반부에 접어든 가운데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HBM4(6세대 HBM) 매출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실적 둔화가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설비 투자 증가세도 3월 이후 다소 둔화되고 있고, 현물과 고정 거래 가격 간 격차 축소로 평균판매가격(ASP) 상승세도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계절적 요인도 부담이다. 통상 반도체 업종은 실적 발표 이후 수급 동력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5월부터는 이 같은 흐름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실적 상향 속도가 실적 발표 이후 일시적으로 둔화됐고,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 설정액도 감소세를 보이는 등 수급 에너지가 약해지고 있다"며 "반도체 지수는 실적 전망 공백기에 들어서는 2·5·8·11월에 시장 대비 부진한 흐름을 보여왔는데, 5월부터는 기존의 계절적 약세 흐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단기 변수도 남아 있다. 지난 29일(현지 시각)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1분기 실적을 발표했지만 시장 반응은 엇갈렸다.

이들 기업은 모두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깜짝 실적'을 내놨지만, 향후 자본 지출 계획을 둘러싼 평가가 갈리면서 시간외 거래에서 주가 방향이 엇갈렸다. 알파벳은 클라우드 부문 성장에 힘입어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일부 해소하며 주가가 상승한 반면, 메타와 MS는 AI 관련 투자 규모가 과도하다는 부담이 부각되며 약세를 보였다.

이들의 투자 향방은 국내 반도체 업종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빅테크의 AI 설비 투자 규모에 연동되는 구조인 만큼, 이들의 자본 지출 변동에 따른 민감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희찬 삼성선물 연구원은 "빅테크 기업들이 AI 투자 규모를 크게 늘려온 만큼, 이번 실적 발표에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주요 이벤트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증시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