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가상 자산 산업을 방치하고 육성보다는 규제에 방점을 찍으면서 해외 가상 자산 사업자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는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만기일이 없는 선물 계약),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 등 다양한 가상 자산 상품이 있는데, 한국은 규제에 막혀 이런 상품이 없다.

웹(Web)3 전문 리서치사 타이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약 160조원이 해외 거래소로 유출됐다. 가상 자산 투자 수요는 많은데, 국내에는 다양한 상품이 없다 보니 해외 거래소를 찾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면서 낸 거래 수수료는 바이낸스 2조7300억원, 바이빗 1조1200억원 등 총 4조77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 5대 가상 자산 거래소가 지난해 거둔 영업 수익 1조7837억원의 약 2.7배에 달한다.

그래픽=정서희

한국은 지금까지 가상 자산 산업 육성보다는 소비자 보호 명목으로 규제에 중점을 뒀다. 2017년 비트코인 광풍이 불자 정부는 국내에서 가상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를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1월에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가상 화폐에 대한 우려가 굉장히 커 가상 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나아가 거래소 폐쇄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의 발언 이후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약 30% 폭락하기도 했는데, 가상 자산 업계에서는 이를 '박상기의 난'으로 부른다.

2017년 빗썸의 가상 자산 거래량은 세계 1위였으나 각종 규제에 막히고 새로운 상품을 내놓지 못하면서 지금은 20위권 안팎으로 밀려났다.

정부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2018년 10월 가상 자산 사업자(VASP·Virtual Asset Service Provider)에 자금세탁 방지와 테러 자금 조달 금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채택하자 2021년 3월 특정금융정보법을 개정하고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VASP 신고제를 도입했다.

이후 2022년 5월 며칠 사이 수십조 원이 증발한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해 11월 전 세계 3위 거래소인 FTX가 파산하자 정부는 투자자 보호에 더 중점을 두고 2024년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 자산 1단계법)을 시행했다.

정부는 현재 가상 자산 2단계법(디지털자산기본법)을 준비 중이다. 1단계법이 투자자 보호와 불공정 거래 금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2단계법은 가상 자산 산업 진흥과 규제를 포괄하는 체계적인 법제화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정부가 2단계법을 만들면서 코인 거래소 대주주의 지분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가상 자산 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두나무를 제외한 다른 거래소는 최대 주주 지분이 모두 50%가 넘어 지분 제한이 시행되면 지분을 강제로 팔아야 한다.

국내 가상 자산 업계가 규제로 발이 묶인 사이 바이낸스 등 해외 가상 자산 거래소는 선물, 옵션, 무기한 선물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 가상 자산 거래량의 약 75%를 가져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전용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됐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상품으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 중이다.

한 가상 자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나 정치권은 가상 자산 산업을 사실상 방치하다 이제서야 따라가기에 급급한 모습"이라며 "IT 강국인 한국은 가상 자산 산업을 육성하기 최적의 환경인데 정부 관심이 없으니 해외 거래소 배만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