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분쟁 조정 민원 25만9938건 중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회부된 것은 139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조위는 금융 소비자가 금융기관을 상대로 제기하는 분쟁을 조정하는 기구다.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해 분쟁 해결을 돕는 것이 역할이나, 그 기능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금융분쟁 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신설 및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 당국 조직 개편이 이번 주를 기점으로 판가름이 나면 "소비자 보호 대폭 강화"를 취임 일성으로 밝힌 이찬진 금감원장이 편면적 구속력 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 139건마저도 12%는 조정 불성립
26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금융분쟁 민원 건수는 총 4만2265건이다. 이는 해당 데이터 집계가 시작된 2017년 이후 최대 규모다. 민원 건수는 2017년 2만5205건에서 2020년 3만2130건까지 늘어난 뒤 올해 처음으로 4만건을 돌파했다.
수익 구조가 복잡하고 손실 위험이 큰 금융 상품이 늘고 판매 채널도 다양해지면서 금융분쟁 민원은 해마다 늘고 있으나, 이 중 분조위에 회부되는 안건은 0.1%가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분조위에 회부된 건은 14건으로 전체 금융분쟁 민원의 0.03%였다. 2017년 이후 지난 8년간 접수된 금융분쟁 민원 25만9938건 중 분조위에 회부된 건은 0.05%, 139건에 그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례가 유사한 민원들은 대표 사례를 분조위에 상정해 일괄 처리하고 있어 분조위 회부 건수는 적을 수 있다"고 했다.
이마저도 분쟁 조정이 모두 성립된 것은 아니다. 분조위에 회부된 139건 중 금융 소비자나 금융회사에서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아 불성립된 건은 17건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환율 헤지(위험 회피) 상품인 키코(KIKO) 불완전판매 사태다. 금융사들은 법적 해석의 다름을 이유로 분조위의 배상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분조위 결정은 조정안이 성립해야 법적 화해 효력을 갖으나, 조정을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편면적 구속력 도입 속도… 재판 청구권 침해 우려도
편면적 구속력 제도는 분쟁 조정 자체를 강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융사가 분쟁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고 소송전으로 끌고 가면 개인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소액' 금융분쟁에 한해 분조위의 조정안을 금융 소비자가 수락하면 금융사는 이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도록 한 것이 제도의 핵심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내건 공약으로, 국정기획위원회는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금융위원회는 편면적 구속력 도입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취지에 공감한다"며 "전문가, 이해관계자 등 의견 수렴을 거쳐 소액 분쟁의 기준 등 세부 도입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금감원도 "금융위와 협력해 제도의 법제화를 위해 필요한 입법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2022년 윤석열 정부 당시 민주당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했을 땐 "금융사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해 조정제도의 본질에 반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이인영 의원은 "수십만건의 금융분쟁 민원이 사실상 방치되는 현실은 금융 소비자 보호의 근본적 허점을 보여준다"며 "편면적 구속력 제도는 소비자가 금융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권리를 보장받는 첫걸음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를 시작으로 국회 차원에서 금융 소비자 보호 제도를 훨씬 더 강화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금융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
다만 금융사의 재판 청구권을 침해하고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가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반론의 기회도 없이 배상 등의 분쟁 조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금융사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고 영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