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자녀의 언어검사를 받기 위해 경기 고양시의 한 의원급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인 A씨 눈에 이상한 점이 포착됐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있다는 안내와 달리 병원에는 진료실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언어검사도 전문의 없이 진행됐고, 검사 결과에 대한 상담에도 전문의는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A씨가 전문의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의원 관계자는 “진료를 보는 곳이 아니라서 담당 선생님들이 (검사 결과를) 평가할 것이다”라면서도 “병원 소속 클리닉이라 의사 처방코드를 활용해 실손보험금 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해당 병원의 홈페이지 대문에는 큼지막하게 ‘실손보험 청구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전문의에 대한 소개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동학과·교육학과를 졸업해 놀이·미술치료 등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치료사 10여명에 대한 정보가 전부였다. 의료인을 ‘바지원장’으로 앉히고 병원을 운영하는 사무장 병원이었던 것이다.
정상 범위인 자녀가 발달지연을 겪고 있다며 불안감을 조성, 필요하지도 않은 치료를 비의료인에게 받게 한 뒤 서류조작으로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병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문제가 제기된 만큼, 실태조사를 통해 불법 의료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4개 손해보험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가 지급한 발달지연 실손보험금은 2022년 1171억원에서 이듬해 1523억원으로 30.1% 증가했다.
보험업계는 병원들의 과잉·불법진료로 보험금 지급 규모가 급증했다고 보고 있다. 발달지연은 또래 아동에 비해 언어·사고 발달이 더뎌 치료가 필요한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면 접촉이 줄면서 의심 사례가 늘었는데, 실손보험금 청구가 가능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부모의 불안감을 이용해 병원이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과잉·불법진료는 이비인후과·비뇨기과·안과·피부과·정형외과 등 소아청소년과와 무관한 의원급 병원들이 ‘아동발달 클리닉’과 같은 간판을 내걸고 부설센터를 설립한 뒤, 민간자격자를 고용해 치료를 맡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민간자격자는 센터에서 치료사 또는 선생님으로 불리는데, 의료법상 의료행위를 할 자격이 없어 엄연한 불법이다.
이 병원들은 무료로 아동발달 검사를 받게 해주겠다는 이벤트를 열어 부모들을 끌어모으고, 정상 범주의 자녀를 과잉 진단해 불안 심리를 조장하고 장기치료를 유도한다. 발달지연이 아닌데도 발달지연(R코드)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고, 의사가 치료에 참여했다고 서류를 조작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실제 경기 김포의 한 정형외과는 부설센터인 수중치료센터에서 7세 아이를 대상으로 1년 4개월 동안 수중언어치료를 했다며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알고 보니 강사에서 수영을 배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센터는 의사가 직접 치료에 참여했다고 허위로 기재한 치료일지를 보험사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정형외과의 부설센터는 지능검사(IQ)에서 124점을 받아 우수 등급이 나온 5세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1년 10개월 동안 언어치료를 진행했다. 흉부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한 의원급 병원은 아이를 상대로 발달지연 검사를 했다고 주장하고선 진료비영수증 내 진료과목을 정형외과로 기재해 덜미가 잡혔다.
의료기관이 이런 부설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와 치료사 모집 등을 설계해 주는 대가로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챙기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한 실정이다. 한 컨설팅 업체가 만든 ‘치료교육동의서’에는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가장 먼저 물어보게 되어 있다. 각종 치료에 드는 비용은 교육비로 표현되는데, 선결제에다 당일취소 환불도 불가능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료기관 부설 아동발달센터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대한 진행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