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기업대출 경쟁이 시들해졌다. 가계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진 은행들은 역마진까지 감수하며 기업대출을 집중 공략했으나, 부실채권이 빠르게 늘자 건전성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또 모회사인 금융지주가 밸류업(기업 가치 개선) 이행을 위해 주주 환원을 강화하고 있어 배당 등과 직결되는 자본비율 관리가 시급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1885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317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 4월 10조원 넘게 폭증했던 기업대출은 6월 이후 감소하는 추세다. 기업대출 증가 폭은 6월 8조251억원에서 7월 6조8803억원, 8월 4조6431억원으로 줄었다.
기업대출은 대기업대출과 중소기업대출(개인사업자 대출 포함)로 나뉘는데, 이중 대기업대출 증가 폭이 크게 줄었다. 대기업대출 월별 증가액은 지난 4월 6조1377억원에서 지난 달 2741억원으로 급감했다. 시장금리가 하락하자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으로 눈을 돌린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대출은 월별 증가액이 같은 기간 4조7563억원에서 2조원대로 떨어졌다.
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주문에 주택담보대출 등을 늘리기 어려워지자, 지난해부터 기업대출 확대에 사활을 걸어왔다. 그러나 무분별한 대출 확대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부실채권이 급증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5대 은행 기업대출에서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0.38%로 1년 전과 비교해 0.07%포인트 올랐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0.31%에서 0.54%로 가장 많이 상승했다. NH농협은행은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비율이 0.39%에서 0.56%로 올랐다.
건전성이 악화하면 은행은 떼일 것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하고, 순이익이 줄어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에 쓸 자본 여력이 감소하게 된다. 또 회수 가능성이 낮은 대출 채권에는 높은 위험 가중치가 적용되는데, 위험 자산이 늘면 주주 환원을 결정짓는 지표인 보통주 자본비율(CET1)은 낮아진다. 특히 기업대출은 가계대출에 비해 높은 위험 가중치가 적용돼 CET1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
금융지주들은 통상 CET1이 13%를 초과하면 적극적으로 주주 환원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지난 2분기 말 기준 KB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13.59%이며, 신한금융지주 13.05%, 하나금융지주 12.8%, 우리금융지주 12.04% 순이다. 은행 관계자는 “하반기엔 통상 대출을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건전성 관리에 주력한다”며 “또 주주 환원을 확대하기 위해선 위험 자산을 빈틈 없이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대출을 무리하게 늘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