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달 25일 서울의 한 은행 창구. /연합뉴스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기조에 은행이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모든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다. 실수요자를 위한 전세자금대출은 물론 잔금(집단)대출까지 모두 옥죄자,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오는 9일부터 유주택자 수도권 전세 대출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기존에 우리은행에서 전세 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가 계약을 갱신하면 보증금 인상 범위 내에서 증액은 가능하지만,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경우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광풍이 불었던 2020~2021년에도 없던 초강수 규제다.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수) 등을 통한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나, “과도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직장·학업 등의 이유로 전셋집을 구해 살고 있는 1주택자도 상당한 데, 이러한 실수요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는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가계대출 실수요자·전문가 현장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1주택자라도 자녀의 진학 등의 목적으로 다른 지역에 주거지를 얻어야 하는,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가 있을 텐데, 기계적이고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과하다”라고 했다. ‘투기 수요는 차단하되, 실수요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임대인 소유권 이전’ 등의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 중단으로 입주를 앞둔 분양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은행 4곳은 주택 매수자가 잔금일과 임차인의 전세대출 실행일을 같은 날로 맞춰, 이 전세금으로 매매 잔금을 치러 주택의 소유권을 확보하는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한 상태다.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만 조건부 전세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분양자는 잔금을 치를 여윳돈이 없을 경우 세입자를 들여 보증금으로 이를 매우던가, 잔금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히면 전세대출이 불가능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전세 보증금을 대출 없이 모두 마련할 수 있는 세입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은행들이 잔금대출도 속속 중단하고 있어 상황은 더 여의찮아졌다. 우리은행은 오는 9일부터 입주자금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SC제일은행도 잔금대출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오는 11월 말 입주를 앞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 ‘올림픽파크포레온’ 분양권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올림픽파크포레온 분양자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가 3년간 유예돼 전세를 바로 놓으려고 했는데,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힌다는 소식에 막막한 상태다”라며 “투기 목적이 아닌 만큼 신규 입주에 한해서는 정부와 은행이 조건부 전세대출을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한 은행 중 신한은행만 신규 분양 주택을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