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달 25일 서울의 한 은행 창구./연합뉴스

최근 한 달 새 급격히 높아진 대출 금리, 늘어난 대출 규제로 금융 소비자들이 혼선을 겪고 있다. 은행의 두서없는 대출 제한 조치에 어느 은행에서, 언제 대출이 실행되는지에 따라 이자 비용은 물론 대출 한도도 수천만원씩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의 은행을 찾아 떠도는 ‘대출 난민’이 늘어나고 있다.

◇ “금리 더 오른다고?”…잔금일 3개월 앞두고 ‘노심초사’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아파트 매매 계약을 체결한 30대 이모씨는 은행권에서 금리가 가장 낮은 지방은행도 이달 초 금리를 올린다는 소문을 듣고, 급하게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영업점을 찾았다. 그러나 잔금일이 내년 1월이라 대출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씨가 방문한 은행은 잔금일 60일 전부터 주담대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씨는 발품을 팔아 잔금일 90일 전 대출 약정이 가능한 은행을 찾았고, 계약을 변경해 잔금일을 한 달 앞당겨 주담대를 받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은행은 잔금일 30~60일 전부터 대출 약정을 할 수 있다. 주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바로 주담대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통상 주택 매매 계약 후 중도금은 1개월 이내에 치르고, 나머지 잔금은 3개월 이후에 치른다.

주택 매수자들은 은행을 찾아다니며 언제부터 대출 약정이 가능한지를 문의하고 있다. 이씨는 “은행 여러 곳에 문의해 본 결과 SC제일은행으로부터 잔금일 90일 전에 대출 약정을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매도자에게 상황을 설명해 잔금일을 한 달 앞당기기로 해 이번 주 중에는 주담대를 신청하려고 한다”고 했다.

주택 매수자들이 잔금일을 앞당기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대출금리를 인상하지 않은 은행도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어서다. 지방은행과 외국계은행 지점에는 ‘대출 금리를 올린다는데 사실이냐’ ‘잔금일을 앞당겨 대출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그동안 금리를 올리지 않은 은행도 줄줄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하면서, 금리 인상 계획을 묻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며 “금리 인상 전 주담대를 받기 위해 잔금일을 앞당기겠다는 고객이 상당하다”고 했다.

현재 은행권에서 금리가 가장 낮은 곳은 지방은행이다. 최근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iM뱅크(옛 대구은행)의 주담대 금리 하단은 연 3.25%다. 경남은행(3.59%), 부산은행(3.74%)도 5대 시중은행(3.65~6.05%, 5년 주기형)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SC제일은행의 주담대 최저 금리는 3.64%다. SC제일은행은 오는 5일부터 주담대 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하기로 했다.

그래픽=정서희

◇ 은행별 대출 한도 천차만별…늘어나는 ‘발품족’

두 달 전 부산에 아파트를 산 박모씨는 주담대를 받기 위해 주거래은행 창구를 방문했다. 박씨는 수도권 소재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빗겨나 대출 한도가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출 만기가 최대 30년으로 줄어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출 만기가 40년일 경우 4억원까지 돈을 빌릴 수 있으나, 30년으로 줄어 3억5000만원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은행 직원은 박씨에게 아직 주담대 만기를 축소하지 않은 은행이 있다고 귀띔했다.

박씨와 같이 어느 은행을 방문하느냐에 따라 대출 한도가 수천만원 차이가 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주담대 만기를 낮추면 연간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주담대 만기는 은행별로 제각각이다. 실행일도 천차만별이다. 신한은행은 2일부터,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주담대 만기를 최대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했으며, 우리은행은 지난달 29일 주담대 만기를 최대 40년에서 30년으로 줄였다. 하나은행은 아직 조치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적용 주택도 다르다. 신한은행은 전국의 모든 주택에, KB국민은행은 수도권 주택만 만기를 줄였다.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박씨는 “그동안은 은행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출 한도와 금리를 조회하면 대략 내가 얼마만큼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이자로 이 정도를 내면 되는구나 예측이 가능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은행 창구를 돌며 내가 이 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한지부터 확인해야 해 번거로움이 커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