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국내 주요 은행장의 임기가 연말에 만료되면서 후속 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 당국이 정한 지배구조 모범 관행에 따라 임기만료 3개월 전 승계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하는 만큼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은행장 후보군에 대한 평가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이 새로 정립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변수다. 그간 폐쇄적인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낸 금융 당국은 지난해 말 은행권 논의를 거쳐 수립한 원칙을 바탕으로 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올해 들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금융사고 등으로 은행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 은행장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은 박종복 행장이 총 10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7일 퇴임한다고 밝혔다. SC제일은행은 조만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시작으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개최해 박 행장의 후임 은행장 선임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주요 은행장 중 가장 먼저 행장 임기가 끝나는 곳은 Sh수협은행으로 강신숙 행장은 오는 11월 17일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수협은행 측은 지난 14일 1차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에 이어 이날 2차 행추위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강 행장이 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 행장은 수협은행 사상 첫 여성 행장으로 취임 첫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지난해 수협은행은 전년 대비 16% 증가한 237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순익성장률 면에서는 시중은행을 압도했다. 다만 강 행장 취임 초기 목표로 세웠던 비은행 금융사 계열 통합을 통한 금융지주사 설립에는 진전이 없다. 역대 수협은행장 중 연임한 인물은 장병구 전 행장뿐이기도 하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NH농협은행장 등 5대 시중은행장 모두 오는 12월 31일 임기가 만료된다. 주요 시중은행의 행장은 기본 2년 임기에 추가로 1년을 더해 3년의 임기가 주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다만 올해는 유난히 금융사고가 많았던 만큼 은행마다 연임 여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손민균

2022년 취임한 이재근 국민은행장은 2년 임기를 마친 뒤 1년 연임에 성공했다. 국민은행이 은행권에서 홍콩H지수 ELS 판매 규모가 가장 컸던 것에 더해 3월 104억원, 4월 383억원 등 배임 사고가 있었던 점은 이 행장의 연임에 걸림돌로 작용된다. 다만 허인 전 국민은행장이 3연임 하며 회사를 4년간 안정적으로 이끈 전례가 있어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도 나온다.

대형 금융사고가 터진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상황이 좋지 않다. 우리은행은 지난 2022년 본점 기업개선부 차장이 회삿돈 700억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 6월 우리은행 대리급 직원이 대출 신청서를 위조해 180억원을 횡령했다. 최근에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들이 350억원 규모의 부당 대출을 받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정 대출은 조 행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취임 이후 역대 최고 실적 달성은 물론 디지털 전환 등 성과가 있지만 금융사고가 걸림돌이다. 농협은행에서는 지난 3월 110억원 규모, 5월에는 각각 53억원과 11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지난 26일 2020년부터 올해까지 100억원대 부당대출을 통한 횡령사고가 또 적발됐다. 아울러 농협금융지주의 특성상 농협중앙회의 입김이 강한데, 지난 3월 취임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계열사 경영진 교체 의중에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혁 신한은행장과 이승열 하나은행장의 경우 연임 가능성이 점쳐진다. 정 행장은 신한은행 순이익 성장은 물론 해외 진출, 해외 법인 실적 향상 등에서 성과가 뚜렷하다.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순이익 2조535억원을 기록하며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2조원을 넘겼다. 같은 기간 해외법인 당기순이익은 40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늘어나며 글로벌 부문에서도 선전했다. 특히 신한은행은 다른 은행과 달리 대형 금융사고가 없었던 만큼 내부통제 및 위험 관리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행장은 기업대출을 기반으로 하나은행을 리딩뱅크로 끌어 올린 공이 있다. 하나은행은 2022년 연결기준 2조986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실적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이 행장이 취임한 뒤인 2023년 연결기준 당기순이익 3조2922억원을 기록하면서 리딩뱅크 자리를 굳혔다. 다만 함영주 회장이 내년 3월 임기를 마치는 만큼 함 회장의 연임 여부 등과 연결돼 거취가 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