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게 부적정하게 350억원 규모의 대출을 내준 정황이 적발됐다.
금감원이 11일 발표한 ‘은행 대출 취급 적정성 관련 수시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차주(돈 빌린 사람)를 대상으로 616억원(42건)의 대출을 실행했다. 대출이 집행된 기간은 손 전 회장이 재임 중이던 시점과 맞물린다.
금감원은 제보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확보한 후, 지난달 우리은행을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우리은행이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전·현직 대표 또는 대주주로 등재된 적 있는 법인, 개인사업자 등 11개 차주를 대상으로 취급한 대출은 454억원(23건) 규모였다. 이밖에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실제 자금 사용자로 의심되는 9개 차주에게 실행된 대출은 162억원(19건)가량이다. 금감원은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관련 업체를 통해 대출을 받은 뒤 원리금(원금+이자)을 대납한 사실을 발견했다.
금감원은 “이중 350억원(28건)은 대출 심사 및 사후 관리 과정에서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차주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은 관련 법인이 부동산 매입을 위한 1차 대출 후 제출한 부동산 등기부등본상 실거래가(20억원)가 차주가 대출 신청 시 제출한 매매계약서(30억원)에 미달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2차 대출을 내줬다. 금감원은 “차주의 사문서 위조, 사기 등의 혐의가 있다”며 “실거래가보다 높은 매매가가 기재된 계약서로 부동산 대출을 받은 사례가 더 있다”고 했다.
또 담보가치가 없는 담보물을 설정하거나 보증여력이 없는 보증인을 근거로 대출을 실행한 사례도 확인됐다. 우리은행은 관련 법인이 대출 신청 당시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음에도, 이미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돼 담보 가치가 전혀 없는 부동산을 담보로 설정해 신용도를 상향 평가하고 20억원 규모의 대출을 실행했다. 연체 이력이 있고, 본인 소유 부동산에 가압류가 설정된 대표가 보증을 섰음에도 3억원을 신용대출로 내준 사례도 적발됐다.
본점 승인을 거치지 않고 지점 전결로 대출을 내준 사례도 발견됐다. 우리은행은 관련 법인이 대출 신청 목적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한 대출금을 회수 조치한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내주기 위해선 본점 승인을 거쳐야 했지만 이를 건너뛰고 지점 전결로 승인했다. 근거 없이 신용등급을 상향 평가해 지점 전결로 대출을 취급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19일 기준 전체 대출 중 269억원(19건)에서 부실이 발생했거나 연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어 “금융지주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향후 법률 검토를 토대로 제재 절차를 엄정하게 진행하고, 허위 서류 제출 관련 문서 위조·사기 혐의에 대해선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관련자에 대해 면직 징계 조치를 하고 경찰에 고발했다”며 “금감원 등의 추가 조사가 있으면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다만 시스템상 대출 여신 취급하는 데 있어서 최고경영자(CEO)가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