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와 금융인, 기업 전문 변호사 등이 다수 포진했던 지난 21대 국회와 달리 이번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경험이 있는 의원들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 1월 열린 '2024 조선비즈 가상자산 콘퍼런스'에 참석한 윤창현 전 국민의힘 의원과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 윤창현 전 의원, 김한규 의원. /조선비즈DB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 1단계 시행 후 가상자산 시장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한 세부 내용을 담을 2단계 법안 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 22대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가상자산을 경험했거나, 시장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적어 2단계 입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에서 제정된 가상자산법이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시세 조종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처벌과 이용자 자산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기능 분산이나 스테이블코인 규제, 가상자산 공시와 평가 체계 마련 등 다음 과제는 2단계 법안에 담길 예정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금융 시장에 대해 식견을 갖춘 경제학자와 법조인, 금융인 출신 의원이 여야에 다수 포진해 가상자산법 제정을 주도했다. 당시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윤창현 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의 김한규 의원, 김병욱, 이용우 전 의원 등이 여야를 대표하는 ‘코인 브레인’으로 꼽혔다.

윤창현 전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명지대 무역학과 교수,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한 정통 경제학자 출신이다. 법조인 출신인 김한규 의원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기업 인수합병(M&A)과 공정 거래, 준법 경영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이용우 전 의원은 한국금융지주 임원을 거쳐 카카오뱅크 초대 공동 대표를 지낸 금융인 출신이다. 김병욱 의원의 경우 지난 2022년 민주당 가상자산 특별대책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22대 국회 정무위에서 모두 자취를 감췄다. 김한규 의원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로 소속 상임위를 옮겼고, 윤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은 재선에 실패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지 못해 역시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22대 국회 정무위는 대부분 새 얼굴로 교체됐다. 국민의힘 8명, 민주당 14명, 조국혁신당 1명, 사회민주당 1명 등 총 24명이 정무위에 입성했는데, 이 가운데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이 있는 금융업계나 경제학자 출신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21대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정무위에 들어왔지만,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해 지난 국회에서 눈에 띄는 입법 활동을 하지 않았다. 같은 당 소속인 강명구, 강민국, 권성동, 김상훈, 김재섭, 이헌승 의원 등도 가상자산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전문 정치인이다. 변호사 출신인 유영하 의원 역시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논의될 2단계 가상자산법에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확한 규제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지난 2022년 갑자기 폭락해 50조원 넘는 투자 피해를 낳은 '루나' 역시 스테이블코인이었다. 사진은 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 3월 몬테네그로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모습. /로이터연합

민주당 소속 정무위 의원들 역시 상당수가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한 경험이 거의 없는 전문 정치인과 시민단체, 노동계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김남근, 박상혁, 이정문 의원 등이 법조계 출신이지만, 역시 가상자산과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민주당 의원 가운데 유동수, 민병덕 의원 등은 지난 국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입법 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과거 공인회계사로 일했던 유 의원은 지난 2021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시절 가상자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변호사 출신인 민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도 정무위에서 가상자산법 제정 등에 참여했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당분간 민주당의 가상자산 관련 입법 논의는 유 의원과 민 의원 등이 주도적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상자산 2단계 법안에 담길 주요 과제로는 거래소의 기능 분산, 스테이블코인 규제 등이 꼽힌다. 현재 국내 거래소들은 상장과 매매, 보관 등의 기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 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능을 나눠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달러화 등 법정 화폐와 가치가 1대1로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은 최근 영향력이 커진 만큼 금융 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커 명확한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현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가상자산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2단계 입법에 대한 논의는 빨라도 올해 연말은 돼야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등 다른 과제에 대한 처리도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