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직원의 100억원대 대출 횡령 사건을 발견하는데 4개월의 시간을 허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부임 이후 그룹 차원에서 내부통제 강화에 나섰으나 막상 금융사고가 터졌을 때 이를 감지하는 시스템이 한발 늦게 작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방의 한 지점에서 100억원가량의 대출금이 횡령된 사실을 파악하고 정확한 피해 금액과 사고 경위를 파악 중이다. 해당 지점의 직원 A씨는 올해 초부터 대출 신청서 등 문서를 위조해 소액의 기업대출을 반복해 일으키며 돈을 빼돌렸다.
우리은행은 올해 5월쯤부터 이상 징후를 파악했다. 전체 대출 중 일부 대출에 대해 표본조사를 하는 내부통제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정황을 파악했다는 게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다. 즉, 해당 지점에선 A씨의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우리은행은 A씨에게 소명 자료 등을 요구했다. A씨는 소명을 포기하고 지난 10일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빼돌린 돈으로 해외선물과 가상자산 등에 투자해 60억원가량의 손해를 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고에 이어 이번에도 100억원대 횡령 사고가 터지자 우리금융그룹의 내부통제 혁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종룡 회장은 지난해 7월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전 직원 내부통제 업무 경력을 필수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연세대 법학과와 손잡고 내부통제 전문가 과정을 신설하기도 했다.
금융사 내부통제 실무 경력이 있는 조창훈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의 경우 기업대출은 은행의 고유 업무이기에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을 것”이라며 “모니터링 시스템이 느슨하게 작동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소액의 대출이더라도 대출이 적절하게 집행됐는지 확인하고 사후관리하는 업무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인력에 기대는 내부통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신 자동화 시스템을 발전시켜 빠른 사후대처로 피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실적으로 사람의 힘에 기대 모든 금융 거래를 관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금융 사고 피해금액이 결국 은행 고객 돈인 만큼 소비자 보호와도 관련 있다”며 “사람의 힘으로 전수조사가 불가능하다면 은행이 이상 거래 특징을 연구하는 등 자동화된 내부통제 시스템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촘촘하게 사후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조기에 이상 징후를 포착하도록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금융 당국은 이날부터 우리은행 현장검사에 돌입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모든 개인의 일탈 행위를 감독 당국이 하나하나 막을 수는 없지만 이번 검사에서 새로운 부실 지점이 발견되면 개선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