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본현대생명 사옥. /푸본현대생명

푸본현대생명이 지난해 생명보험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냈다. 새 회계기준(IFRS17) 적용으로 보장성 보험을 판매하는 게 실적에 유리한데, 퇴직연금 판매 비중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장성 보험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강력한 영업 채널이 구축되지 않아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푸본현대생명은 지난해 110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324억원 적자로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150% 하락한 -148.3%를 기록했다. 총자산수익률(ROA)은 -0.6%다.

푸본현대생명이 적자 늪에 빠진 이유는 퇴직연금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IFRS17에서는 부채를 시가 평가한다. 저축성 보험을 판매한 뒤부터 앞으로 지급될 보험금을 미리 회계에 반영해야 한다. 고객에게 받을 보험료보다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더 큰 저축성 보험은 팔수록 손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 이후 보장성 보험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푸본현대생명은 여전히 퇴직연금에 집중하고 있다. 푸본현대생명이 지난해 판매한 보험 중 퇴직연금은 2조1655억원으로 전체의 56.7%를 차지하고 있다. 비율만 놓고 보면 전년 대비 3%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삼성생명의 사망보험 판매 비중이 2021년 38.2%에서 지난해 43.5%로 증가한 것과는 대비된다.

퇴직연금에 집중하면서 고금리에 직격탄을 맞았다. 퇴직연금은 종신보험 등 장기보험보다 보험계약이 짧다. 금리가 상승하면 부채가 증가하는 구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상품이 많으면 금리가 인상될 때 손해를 본다”라며 “회계기준까지 바뀌면서 저축성 보험을 가진 회사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푸본현대생명은 보장성 보험 판매를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생명보험사보다 인지도가 낮고 법인보험대리점(GA) 등 강력한 영업 채널이 부족한 상황이라 단기간에 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당장 이달 푸본현대생명이 새롭게 출시한 상품도 최저보증이율이 있는 연금보험이다.

푸본현대생명이 이달 새롭게 출시한 연금보험 상품. /푸본현대생명

푸본현대생명의 신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지난해 9월 말 경과조치 후 기준 163.8%로 같은 기간 생명보험사 평균 195.9%를 밑돈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 가입자가 한꺼번에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보험사가 이를 모두 지급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푸본현대생명은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2018년 9월 사명을 변경한 이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1조144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지난해에만 찍어낸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만 268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2019년 10월 발행했던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까지 돌아온다. 발행 5년 뒤 채무를 상환하는 게 관례라고 보면 올해 10월 만기가 된다. 새로운 후순위채를 발행해 기존 후순위채를 상환할 수도 있지만,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푸본현대생명은 2022년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 판매)를 많이 하고, 애초에 보장성 보험에 주력하던 회사가 아니었다”라며 “법인보험대리점(GA)이 없는 상황에서 보장성 보험 영업을 시작한 상황이라 이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2003년 녹십자생명보험으로 처음 설립된 푸본현대생명은 2012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 현대라이프로 사명을 바꾸었다가 2018년 대만 1위 금융그룹인 푸본금융그룹이 인수한 후 상호를 푸본현대생명으로 다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