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경기 평택시 오성면. 논밭 사이 좁은 도로를 지나자 214㎡(65평) 크기의 흰색 창고가 나타났다. 창고 안 철제 선반 위로 컴퓨터 모양의 채굴기 80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선반 뒤로는 환풍기 2개가 채굴기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열심히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고, 직원들은 추가 구매한 채굴기 40여대가 놓일 선반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 창고는 레이븐 등 각종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을 채굴한 뒤 이를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판매해 수익을 내는 채굴장이다. 김형조(31)씨가 지난 1월 창고를 낙찰받아 채굴장을 만들었다. 물건을 단순 보관할 목적이었으나,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자 급히 채굴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씨는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등 각종 부품을 중국에서 들여와 채굴기를 조립했고, 하루 평균 1000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김씨뿐만 아니라 채굴장 운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창고에서 가동 중인 채굴기 일부는 김씨에게 관리비 등을 지불하고 운영을 맡긴 사람 소유다. 김씨는 “코인 광풍으로 개당 240만원짜리 채굴기 120여대가 한 달 만에 작동하기 시작했다”라며 “앞으로 1000대 정도가 더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자 전멸했던 채굴장이 부활했다. 비트코인은 물론 알트코인 가격도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이 채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채굴 시장이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17일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지난 7일 하루 동안 글로벌 비트코인 채굴기 수익은 7860만달러로 2021년 4월 최고치를 넘어섰다.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 14일 7만3797달러를 기록하는 등 연일 최고가를 경신한 결과다.
채굴 수익이 폭발적으로 늘자 알트코인 채굴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알트코인을 채굴해 거래소에 판매하는 것으로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은 값비싼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하고, 전기를 많이 잡아먹어 소규모로 운영해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반면 알트코인 채굴은 수백만원 투자로도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간 국내 채굴장들은 이더리움 채굴에 집중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이더리움이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바뀌면서 채굴이 불가능해지자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채굴장은 전멸하다시피 했고, 이더리움 채굴에 사용됐던 그래픽카드 가격도 80~90% 떨어졌다.
상황을 바꾼 것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다. 기관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자 비트코인은 물론 알트코인 가격까지 치솟았다. 알트코인 판매로 월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기료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경기 부천시에서 2000㎾(키로와트) 규모의 채굴장을 운영하고 있는 더곤글로벌 대표 장세곤씨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 상장된 카스파 코인을 채굴하고 있다. 모든 채굴기를 한꺼번에 가동하면 월 전기료만 1억원 이상이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카스파 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장씨는 “코인 가격이 올라가고 유동성도 충분해 코인이 현금과 동일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라며 “최근 어떤 채굴기를 사는 게 좋냐는 문의가 많아졌고, 신규 진입자도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