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4조원에 이르는 ‘콕(KOK) 토큰’ 사기 논란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블록체인업체 미디움이 다른 회사를 앞세워 코스닥 상장사의 경영권을 인수한 후 100억원 규모의 회사 자금을 빼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해당 상장사는 펀더멘탈(기초체력)과 재무 구조가 악화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금융감독원 정보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비유테크놀러지(옛 에이트원)는 지난 4월 26일 미디움과 부산시 사업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고 31억원을 지급했다.

이 사업은 지난해 미디움의 콕 토큰 사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실상 3월부터 중단됐다. 비유테크놀러지는 이미 중단된 사업을 인수하면서 투입한 자금 전액을 손상 처리했다. 이후 3분기에는 미디움과 다시 70억원 규모의 블록체인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미디움이 피데스홀딩스라는 회사를 앞세워 비유테크놀러지의 경영권을 인수한 후 사업 계약을 통해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피데스홀딩스는 지난해 12월 14일 세워진 회사로 현재 비유테크놀러지의 대주주다.

피데스홀딩스는 설립 직후인 지난 1월 30일 50억원을 투입해 비유테크놀러지의 전환사채(CB)를 사들였다. 이어 2월 6일에는 비유테크놀러지가 미디움에 지급해야 할 영업양수도이행보증금 20억원에 대해 지급 보증을 서기도 했다.

이후 피데스홀딩스의 비유테크놀러지 인수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3월 23일 피데스홀딩스 대표 이모(38)씨는 비유테크놀러지 단독대표가 됐다. 4월 21일에는 비유테크놀러지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식 903만2259주(70억725원)를 확보하며 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래픽=손민균

◇ “미디움, 사업 존속 위해 상장사 ‘얼굴마담’으로 이용” 주장

피데스홀딩스가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비유테크놀러지는 미디움과 잇따라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손상 처리한 부산시 블록체인 사업과 이후 맺은 추가 사업으로 비유테크놀러지가 미디움에 지급한 돈은 총 100억원을 넘어선다. 피데스홀딩스가 비유테크놀러지 인수를 위해 투입한 자금과 비슷한 규모다.

눈에 띄는 것은 피데스홀딩스가 미디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라는 정황이 짙다는 점이다. 미디움의 지주사와 피데스홀딩스는 법인 등기상 주소가 같은 공유 오피스다. 두 회사 모두 해당 사무실에 상주 인원이 없다. 최근 여러 명의 미디움 출신 직원들이 비유테크놀러지로 이동했는데, 이 점도 미디움이 피데스홀딩스를 앞세워 비유테크놀러지의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의혹에 무게를 더한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콕 토큰 사기 논란에 휩싸여 블록체인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진 미디움이 코스닥 상장사를 ‘얼굴마담’ 역할로 세우기 위해 비유테크놀러지를 인수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콕 토큰이 쓰이는 플랫폼의 운영사 미디움은 4조원대의 투자 사기를 저지른 정황이 드러나 현재 서울남부지검과 울산경찰청, 서울 강남경찰서 등의 수사를 받고 있다.

콕 사업에 참여했던 한 핵심 관계자는 “피데스홀딩스 대표 이씨는 미디움의 임원인 정모씨와 막역한 선후배 관계”라며 “사기 논란이 있는 미디움이 부산시에서 추진 중인 블록체인 사업을 지키기 위해 피데스홀딩스를 세워 비유테크놀러지를 인수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유테크놀러지는 피데스홀딩스의 인수 이후 본업과 관계가 없는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비유테크놀러지는 군용·산업용 확장현실(XR) 시뮬레이터 관련 소프트웨어와 기기 판매가 전체 매출의 100%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웹3와 증권형토큰(STO) 등 블록체인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한 공유오피스. 이곳은 미디움 지주회사와 피데스홀딩스가 법인 등기 상 주소지로 등록한 곳이다. 지난 27일 오후 해당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두 기업 측 인물을 만날 수 없었다. 해당 건물 관리 업체 측은 "(두 회사는) 상주 인원이 없는 입주 업체다"고 전했다. /김태호 기자

◇ 피데스홀딩스 인수 후 비유테크놀러지 건전성 악화

피데스홀딩스의 인수 이후 비유테크놀러지의 경영 상황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현금자산은 지난해 말 21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에는 3500만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부채는 126억원에서 186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3분기 누적 순손실은 233억원으로 전년(56억원)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전환사채 상환 기일이 다가오는 점도 비유테크놀러지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피데스홀딩스는 올 초 확보한 50억원짜리 전환사채를 담보로 제3자인 A씨에게 32억5000만원(연이율 20%)을 빌렸다. A씨는 내년 1월 30일부터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일 A씨가 풋옵션을 행사한다면 당장 현금이 부족한 비유테크놀러지가 부도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조선비즈는 미디움과 비유테크놀러지에 피데스홀딩스를 낀 석연치 않은 인수 과정과 무리한 블록체인 사업 투자 등을 묻는 메일을 보냈지만, 두 회사 모두 회신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