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의 부실채권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전체 대출 중 3개월 이상 연체돼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이 9개월 새 2조원 넘게 급증했다. 고금리 기조와 경기 침체 여파로 가계와 기업의 상환 능력이 악화된 데 따른 것이다.
금융지주는 은행을 중심으로 부실채권을 상각·매각해 장부에서 털어내고 있으나 연체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수조원대의 충당금도 쌓고 있으나, 지난달 코로나19 금융 지원이 종료되고 부실기업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일몰돼 연체율이 늘며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3분기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 총액은 7조4394억원으로 지난해 말 5조3997억원 대비 37.8%(2조397억원) 증가했다. 하나금융의 고정이하여신이 46%(5790억원)로 가장 많이 늘었으며, KB금융 43.9%(6397억원), 우리금융 36.9%(3990억원), 신한금융 26.4%(4220억원) 순이다.
대출은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구분되는데, 금융 회사들은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로 분류된 대출은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간주해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리해 관리한다.
고정이하여신비율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총여신에서 고정이하로 분류된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3분기 말 기준 신한금융이 0.52%로 가장 높았으며, KB금융 0.48%, 하나금융 0.46%, 우리금융 0.41%를 기록했다. 2018년 이후 2021년까지 낮아져 온 4대 금융지주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상승세로 전환, 올해에만 0.1%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금리 상승으로 주요 계열사인 은행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하는 차주(돈 빌린 사람)가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가계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평균 0.19%였던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올해 3분기 말 0.27%로 0.08%포인트 늘었다.
기업 부문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확대에 제동을 걸자 은행은 기업대출로 눈을 돌려 공격적으로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데 연체율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은행 중 기업대출을 가장 많이 늘린 하나은행의 기업 연체율은 지난해 말 0.23%에서 3분기 말 0.32%로 0.09%포인트 증가했다. 우리은행도 기업 연체율이 0.32%를 기록 중이며, 신한은행 0.31%, KB국민은행 0.23%다.
은행은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부실채권을 대량으로 털어내고 있다. 4대 은행과 NH농협은행이 올해 9월까지 상·매각한 고정이하여신은 총 3조2201억원 규모다. 이는 전년 동기(1조5406억원)는 물론이고 연간 규모(2조2711억원)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은행은 고정이하여신 중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는 부실채권은 장부에서 지워버리거나(상각)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식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수조원의 상·매각에도 연체율은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말 대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 코로나19 관련 금융 지원책이 종료된 여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일몰로 한계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부실채권을 대거 상각·매각해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내년도 올해와 같은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부실 위험을 조기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