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줄어들었던 신용대출이 증가세로 전환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금융 당국이 최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대출 규제에 나서자 일부 수요가 신용대출로 옮겨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14일 기준 108조7616억원으로 8월 말(108조4171억원)보다 3445억원 늘었다. 이달 말까지 신용대출 잔액이 늘 경우, 2021년 11월(3059억원)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증가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신용대출은 주택시장이 과열됐던 2021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뒤 2022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 감소 폭은 줄고 있다. 신용대출 잔액 월별 증감액은 1월 마이너스(-) 3조3520억원, 2월 -2조1382억원, 3월 -2조5463억원, 4월 -1조88억원, 5월 -2583억원, 6월 -7442억원, 7월 -2462억원, 8월 -2656억원이다.
금융 당국이 대출 한도를 줄이며 주담대 문턱을 높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융 당국은 지난달 10일 “50년 만기 주담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겠다”고 했고, 은행들은 줄줄이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하거나 연령을 제한하는 등 상품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금융 당국은 이달 들어선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줄 때 실제론 50년간 돈을 갚지만 대출 만기는 40년이라고 가정하고 대출 한도를 계산하도록 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주담대 산정 만기를 줄이면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이 때문에 집을 사려는 사람이 주담대를 전보다 많이 받을 수 없게 되자, 신용대출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전방위적으로 주담대 줄이기에 나서자 일부 수요가 신용대출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마이너스통장을 포함한 신용대출은 금리와 대출 여건 등 금융 환경에 따른 반응이 주담대보다 즉각적인 편이다.
낮은 금리도 신용대출 증가세에 힘을 보탰다. 한국은행이 올해 세 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한 데다 정부가 이자 부담 완화 등을 이유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자,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올해 들어 약 1%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올해 1월 6.63~7.14% 수준이었던 5대 은행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7월 5.52~6.25%로 낮아졌다. 카카오·케이·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 역시 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1월 8.04~8.47%에서 7월 6.33~7.44%로 인하됐다.
이에 신용대출 금리가 조만간 오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 당국이 대출금리 인하를 강조해 온 탓에 기준금리가 높아져도 가산금리를 낮추고 우대금리를 높여 어렵게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라며 “은행채 금리가 오르고 있는 데다 정부가 가계대출 단속을 하고 있어 은행들이 점점 신용대출 금리를 정상화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주담대 규제에 신용대출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늘며 ‘풍선효과’가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금융 당국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주담대를 규제하면 가계대출의 다른 축인 신용대출이 튀어 오를 수밖에 없다”며 “기준금리가 인상되지 않는 한 이런 추세는 이어질 수 있어 금융 당국이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021년 주택시장이 과열됐을 당시 주담대 규제로 대출을 더 받기 어려워지자 젊은층을 중심으로 신용대출이 늘었던 적이 있다”며 “그동안 기준금리가 오르며 신용대출이 빠르게 줄었으나 다시 오름세를 보이는 것은 주택시장 회복세에 따른 것인데, 추세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