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한 부서나 영업점에서 3년 이상 근무하는 직원을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은행 내부통제 혁신안(이하 혁신안)’이 내년 중 시행될 전망이다. 애초 2025년 시행을 앞두고 있었으나, 최근 은행권에서 잇달아 횡령·비리가 터지자 조기 시행을 추진하는 것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혁신안 일부의 조기 시행을 위해 은행권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혁신안 중 직원 순환 배치와 명령 휴가제 도입 등을 내년 중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혁신안에는 3년 이상 장기 근무자를 순환근무 대상자의 5% 이내 또는 50명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부서나 영업점에서 3년 이상 근무하는 직원을 최소화해 횡령 사태 등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보통 특수계약직(변호사·회계사 등의 전문직)을 제외한 일반 행원들은 순환근무를 하지만, 일부 직원은 업무 전문성을 이유로 한 부서에 장기 근무하는 경우가 있다. 앞서 횡령 사고가 발생한 우리은행과 경남은행 직원들도 모두 한 부서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회삿돈을 빼돌렸다.
혁신안에는 장기근무자 승인 권한을 기존 부서장에서 인사 담당 임원으로 상향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장기근무자의 채무 및 투자 현황을 제출받는 등 사고 위험 가능성을 승인심사에 반영하기로 했다. 장기 근무 승인심사는 매년 실시하며, 최대 2회로 제한토록 했다.
불시에 휴가를 보내 업무 현황을 점검하는 ‘명령 휴가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대상자는 연 1회(회당 1~3영업일) 이상 명령 휴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대상자도 현재 영업점 직무 위주의 위험 직무자에서 본점 직무까지 확대하고 동일 부서 장기 근무자, 동일 직무 2년 이상 근무자도 포함하기로 했다.
혁신안은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하자 금감원과 은행권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마련했다. 금감원은 당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은행권의 의견을 반영해 혁신안 시행을 2025년으로 유예했다.
그러나 최근 은행권에서 연이어 횡령,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혁신안 조기 시행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 경남은행에서 1000억원대 횡령이 발생한 데 이어 KB국민은행 직원들은 업무상 알게 된 고객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7억원 규모의 주식 매매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시중은행 전환을 노리고 있는 DGB대구은행은 고객 몰래 문서를 꾸며 증권계좌를 개설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금감원 검사를 받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BNK금융지주(138930)의 장기 근무자 인사 단행을 참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BNK금융은 지난달 18일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장기 근무자 100여명 중 70여명을 대상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두 은행은 본점에서 5년 이상, 영업점에서 3년 이상 동일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을 장기 근무자로 분류해 인사를 진행했다. 이번 장기 근무자 인사 후 두 은행에서 업무상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기존 은행도 혁신안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