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부실 위험에 처한 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기초체력이 떨어진 기업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중국 경기 침체 등의 악재까지 겪으면서 부실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달 말부터 코로나19 금융 지원도 단계적으로 종료돼 부실 위험 기업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
4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기업신용위험평가 현황을 분석한 결과, 워크아웃 등 관리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부실 징후 기업과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이 지난해 상반기 11개에서 올해 상반기 16개로 45.5% 늘었다. 부실 징후 기업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 역시 지난해 상반기 614개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777개로 1년 만에 26.6% 증가했다.
채권은행은 세부평가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산업위험, 영업위험, 경영위험, 재무위험, 현금흐름 등에 대해 추가 평가를 한 뒤 ▲정상(A등급) ▲부실 징후 기업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B등급) ▲부실 징후 기업(C등급)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D등급) 중 하나의 등급을 부여한다.
C·D등급으로 분류됐다는 것은 주채권은행 외에 다른 곳에서 추가로 자금을 수혈받지 못하면 정상적인 채무 이행이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세부평가 대상 기업은 900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650개에서 38.5% 증가한 것이다. 세부평가 대상 기업이 증가했다는 것은 영업·재무구조가 악화돼 채권은행의 구체적인 진단이 필요한 기업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신용위험평가는 은행에서 자금을 빌린 기업 가운데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을 가려내는 제도다. 채권은행은 ‘기업신용위험 상시평가 운영협약’에 따라 대기업(은행권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과 중소기업(개별은행 신용공여 30억원 이상)에 대해 정기 기본평가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만기 연장·상환 유예 등 정부의 유동성 지원 조치에 따라 부실 징후 기업이 감소세를 보였다. 과거 전체 은행권에서 부실 징후 기업은 연평균 200개씩 나왔지만,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167개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서는 부실 징후 기업이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으로 185개를 기록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달 말 코로나19 금융 지원 조치가 끝나면 기업의 부실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금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단계적으로 종료됨에 따라 이미 기업들은 금융 당국에 상환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경기 둔화와 대출금리 상승으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계획대로 대출을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은행권은 코로나19 지원 조치 종료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해 부실 위험을 줄이기로 했다. 기업이 상환 계획서에 따라 대출을 갚을 수 있도록 유예된 이자에 대해선 최장 1년 거치 후 5년 분할 상환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 기업의 부실이 금융권까지 전이되지 않도록 충당금 규모도 늘리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의 부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각 시중은행이 만기 연장 등 자체적인 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손실 흡수 능력을 늘리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채권은행이 공동관리절차를 통해 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촉진하는 방안은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 기업의 워크아웃을 추진하는데 기반이 되는 기업구조조정초진법(기촉법)의 효력이 오는 10월 15일 끝나기 때문이다.
채권은행은 기촉법에 따라 기업의 신청이 있다면 채권단협의회를 통해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 기촉법은 국회 일몰 시한을 넘겨 내년이 돼야 다시 입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