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식당 운영이 어려워진 30대 자영업자 A씨는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는 최근 대출을 갚기 위해 정부나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인터넷을 통해 알아봤다. 태극 무늬가 있는 광고 화면에 생계지원, 정부지원 등의 문구를 보고 정책금융상품으로 생각한 A씨는 전화 상담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자꾸 다른 대출 상품을 이용하라는 말에 의심이 생겨 전화를 끊었고, 이후 해당 업체가 불법 사금융 업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금리와 물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어려움이 커진 금융취약계층을 노린 불법사금융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금융상품이 주목을 받자 관련 기관 사칭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민금융진흥원도 불법 대부광고에 사용된 전화번호를 이용중지 요청할 수 있게 하는 등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부터 불법 대부광고에 사용된 전화번호의 이용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이 서금원으로 확대됐다. 기존에는 시·도지사, 검찰총장, 경찰청창 및 금융감독원장만이 이용중지를 요청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종적으로 불법 대부광고에 사용된 번호를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재연 서금원장은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사금융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전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신속하게 불법 대부광고 전화번호를 차단하는 등 선제적 대응을 통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서금원이 전화번호 이용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기관에 포함되게 된 배경엔 날로 교묘해지는 불법 대부업체가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 대부광고 전화번호 이용중지 요청 건수는 2019년 1만3709건, 2020년 1만1305건, 2021년 1만9877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불법 대부광고 문자메시지는 2019년 1058건, 2020년 1459건 등에 그쳤지만, 2021년에는 1만1941건으로 8배 이상 늘었다.
이 업체들은 광고 제목에 정부나 공공기관을 사칭하거나, 금융정책·기관 이름을 유사하게 조합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 생계지원 저금리대출, 정부지원 채무통합, 서민금융 햇살론 등이다. 서금원을 사칭하는 문구도 서민금융원, 서민금융지원센터, 대한민국 서민금융 등 다양하다.
불법 대부광고는 문구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유사하게 만들어 금융소비자를 유인한다. 태극 문양 로고나 청와대 이미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거나 마감이 임박했다는 내용으로 금융소비자들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전화나 문자를 받고 상담을 받으면 미등록 대부업자의 불법 고금리 대출을 받도록 안내하는 등 불법 대부 행위로 이어진다.
불법 금융 광고는 매해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의 단속은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금융 광고는 2018년 26만9918건에서 2019년 27만1517건, 2020년 79만4744건, 2021년 102만5965건 등 증가세를 보였다.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진 268만5906건이 수집됐다. 이 중 불법대부 광고가 177만8832건으로 66%를 차지했다.
불법 금융 광고가 성행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0년 9월부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불법 금융 광고 감시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하지만 수집된 불법 금융 광고에 대해 전화번호 이용을 중지하거나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하는 등 사후 조치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마저도 조치 건수는 전체 불법 금융 광고의 4.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금융 당국의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면서도 소비자들이 자체적으로 대출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는 등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갈수록 불법 금융광고의 유형이 다양하고, 광고의 형태도 지능화되고 있다”면서 “서민금융지원이 필요하면 정부 기관 공식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앱), 콜센터 등 공식 상담 채널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