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우리은행 모델이라 신년 달력에도 나온다고 하더라. 혹시 몰라 지점에 들려 물어봤다가 운 좋게 구했다. 평소엔 달력 준다고 해도 안 받는데, 아이유 달력은 못 참겠다.”
“코끝이 시리기 시작하면 은행달력을 받아야 하는 시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새마을금고 벽걸이 달력을 받아 왔다. 집 여기저기에 달력이 걸려 있는데, 올해는 2개밖에 못 얻어서 내년은 벽이 썰렁할 예정이다.”
은행 달력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모바일로 대체되는 데다가 은행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실천을 위해 발행량 자체를 줄이고 있어서다. 이에 은행들은 수요를 만족하면서 환경보호까지 실천하는 방법으로 달력 배포 방식을 바꾸고 있다.
7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친환경 ESG를 테마로 국제산림관리협의회에서 인증받은 친환경 종이를 사용해 2023년 달력을 제작했다. 탁상형 달력은 쉬운 재활용을 위해 삼각 지지대 코팅을 없앴고, 비닐 포장지 대신 종이 포장지를 활용했다. 그림형 달력도 플라스틱 홀더를 종이로 바꾸고, ESG를 주제로 한 국내 화가들 작품으로 구성했다.
하나은행은 달력을 배포하는 과정에서 기부할 수 있게 했다. 오는 31일까지 매일 3000부씩 달력을 선착순으로 배포하는데, 이벤트 신청 달력 1부당 기부금 100원을 적립한다. 적립금은 청소년 및 대학생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인 아이들과미래재단에 전달된다. 하나은행은 MZ세대에 인기가 많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머니사이드업과 협업해 니즈를 충족시키기도 했다.
은행들은 종이 대신 모바일 달력을 주로 이용하는 MZ세대를 겨냥해 ‘디지털 플래너’도 배포하고 있다. 종이 발행량을 줄이는 동시에 여전한 달력 수요를 충족할 방안이다. KB국민은행은 오는 15일까지 KB스타뱅킹 및 리브 넥스트(Next) 이벤트 페이지에서 내년 ‘갓생(God生·부지런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 목표를 입력한 전원에게 디지털 플래너를 무료 배포한다. 하나은행의 ‘하나원큐’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내년 1월부터 디지털 플래너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달력 제작을 전면 중단한 곳도 있다. 외국계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은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관리하는 데 익숙해진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맞춰 지난 2017년부터 아예 달력과 다이어리 제작을 중단했다. 대신 기존 달력 제작에 들었던 비용의 일부를 세계자연기금(WWF)에 기부하고, 고객 편의 제고를 위해 은행의 디지털뱅킹 역량을 강화하는 데 쓰기로 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각 은행은 달력을 매해 최소 500만부씩 제작했다. 그러나 비용도 비용인데다가 스마트폰 달력 활용이 일반화되면서 은행들은 달력 발행량을 줄여 왔다. 최근 금융권에서 강조하는 ESG 경영 차원에서 봐도 종이 달력은 환경 중심 경영 기조에 딱히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 최근 2~3년간 달력 발행량은 300만부선으로 떨어졌다. 2020년도 달력 기준으로 KB국민은행은 400여만부,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약 120만부, 150만부씩을 제작했다. 전년 대비 20%가량 감소한 규모다. 2021년엔 이보다 30% 더 줄였다.
그러나 고령층 등 여전히 종이 달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예전부터 ‘집이나 매장에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 때문에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공급이 줄면서 마치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 상품처럼 다뤄지는 분위기가 더해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달력을 찾는 고객들이 여전히 계시기에 이를 충족하면서도 환경 보호 등 ESG 경영을 실천할 방안을 찾고 있다”면서 “오프라인에서 달력을 구하는 경우 매년 달력 배포량이 줄다 보니 모든 영업점이 아닌, 달력을 주로 사용하는 세대의 고객이 많다고 판단되는 지점 위주로 배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