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제13차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스1

자금시장 경색에 따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으로 지원을 받는 금융사들이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위험이 큰 PF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금융당국이 나서 유동성 공급에 나서자, 고위험 투자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당국 수장들도 잇따라 유동성 지원을 받는 금융사에 대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했다”고 비판하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8일 국회로부터 입수한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달 초 열린 정무위 회의에 참석해 채권안정펀드 등을 통해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해 일부 금융사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데 대해 “돈 벌기 위해서 리스크를 지고 한 데 대해 직접 ABCP를 매입해 준다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당국이 산업은행 등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할 때) 통상적으로 금융사가 발행하는 기업어음(CP)은 취급을 안 한다”며 “금융 전문가라고 해놓고 단기자금도 관리 못 하면서 그게 무슨 금융 전문가냐”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에 증권사 CP를 사주는 것은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라며 “일단 간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서 시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강원도의 레고랜드 ABCP 채무불이행 사태 이후 채권시장 경색이 심화하자 채안펀드, 증권금융·산업은행의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 50조원+알파(α) 규모의 시장안정화조치를 가동했다. 특히 이번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은 부동산 PF ABCP 관련 시장 안정화를 위해 예외적으로 증권사 등 금융사가 발행한 CP도 매입 대상에 포함시켰다.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가 자체적으로 조성한 제2 채안펀드도 45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제2 채안펀드는 신용등급 A2- 이상의 부동산 PF ABCP 차환 발행물에 투자된다.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본 금융사는 주로 중소형 증권사 등 부동산 PF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한 금융사다. 이들은 후순위 부동산PF 비중을 늘리며 실적 잔치를 벌였으나,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자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김 위원장에 이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채안펀드 등을 통한 PF 부실 관련 지원에 대해 금융사의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은 전일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단기성과에만 집착해 시장 상황 변화에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관리를 소홀히 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병행해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며 “지나친 수익성 일변도 영업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은 또 “유동성 지원을 받는 증권사가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자구계획 이행 여부 등을 철저히 관리해 도덕적 해이가 없도록 하는 한편, 향후 부동산 익스포져 등 특정부문에서 위험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정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도 유동성 지원을 받는 금융사를 두고 ‘고수익을 얻으려면 고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공식이 깨졌다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채안펀드 조성에 참여한 금융사 관계자는 “예전 PF 사태 때 저축은행에 있던 인력이 중소형 증권사로 넘어가서 고위험 PF사업을 급격하게 확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시장이 얼어붙더라도 리스크 관리를 한 금융사는 버틸 수 있는데 시장이 좋을 때 성과급 잔치를 벌이다가 위험 대비를 하지 않은 금융사를 지원한다는 불만도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일부 금융사의 리스크를 사회 전체가 지는 것이어서 모럴해저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