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로 부당하게 깎인 임금 즉각 지급하라!”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 나섰다. ‘합리적 이유 없이 직원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후 은행권 노조가 임금피크제 관련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노조의 임금피크제 무효 집단소송은 업계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시중은행보다는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 비중이 더 큰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노사 간 갈등이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1명의 소속 노동자 명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로 깎인 임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되면서 늘어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노사가 합의한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국민은행 제공

KB국민은행 노사 간 법정 공방의 핵심 쟁점은 현 임금피크제 방식이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효력 요건을 충족하는지가 될 전망이다.

지난 5월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 정도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4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현행 국민은행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했기 때문에 불법이자 무효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임금 피크 진입 전·후 같은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만 56세가 되면 임금의 40%를 깎고, 매년 5%씩 추가로 삭감해 만 58세부터는 50%를 깎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회사 측은 “아직 소장을 전달받지 못했다”면서 “추후 법리적으로 검토한 뒤 소송 절차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이 임금피크제 관련 집단소송 확산으로 번질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지난 5월 대법원 판결 이후 금융노조 산하 지부 중 KB국민은행 노조가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을 준비해왔다.

특히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 관련 노사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이 일반 은행보다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산업은행 시니어노조는 지난 2019년 임금피크제 적용이 무효라며 깎인 임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뒤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작년 1월 기업은행 현직자 및 퇴직자 470명도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을 반환하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경우 희망퇴직을 통해 정년 전 은행을 떠나는 직원이 많은 반면, 국책은행은 희망퇴직금이 정부 지침을 따르기 때문에 제한적이라 정년까지 다니려는 임금 피크 대상 직원이 더 많다”면서 “임금피크 대상 직원이 많은 국책은행이나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집단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윤두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직원 대비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 비율은 ▲산업은행 8.9% ▲기업은행 7.1% ▲수출입은행 3.3%로 나타났다. 내년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진입 인력은 약 15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 관계자는 각각 “현재 내부에서 임금피크제 관련해 제기된 이슈는 없다”면서 “임금 피크 대상 직원에 대해서도 임금 피크 전후 업무를 달리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