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까지 구현한 것 중 가장 야심찬 사회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스페인 글로벌은행 BBVA(방코 빌바오 비스카야 아르헨타리아)의 오누르 젱크(Onur Genç) 회장은 "오는 2025년까지 각 나라의 포용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5억5000만유로(약 745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6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 대표은행 BBVA는 지난해 대규모 지속가능성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다. 여기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대두되는 경제·사회의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사회적책임경영은 이제 기업들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취약 계층과 개인, 기업 등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은 국가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에도 중요한 문제다.

BBVA의 사회적 이니셔티브 투자 규모. / BBVA

BBVA의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는 크게 '불평등을 줄이고 기업가 정신을 장려하는 것', '평등한 교육 기회를 창출하는 것', '연구와 문화를 지원하는 것'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목표 하에 BBVA 소액금융재단은 위기에 놓인 기업가 450만명를 대상으로 70억유로(9조4728억원)의 소액 대출을 지원하고, 경제·과학·문화 분야의 연구자와 창작자를 위한 지원금으로 1억8000만유로(2436억원)를 편성했다. 멕시코. 콜롬비아, 터키, 스페인 등에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교육 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이른바 '사회적 금융'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사회적 금융이란 서민금융 또는 소액금융(마이크로파이낸스)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 금융과 기업 창업 및 발전 등을 돕는 진흥 기금 등을 일컫는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사회적 경제는 유럽 등에서 오래전부터 고용 유지,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사회 가치를 실현하면서 보완 경제 역할을 해왔다"면서 "유럽의 각국들은 EU 지원과 별도로 사회적 금융을 통해 사회적 경제 주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 서민금융, 소액금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독일에서는 신생·영세기업의 금융접근성을 제고하고자 독일재건금융지주(KfW)에서 지원책을 마련했다. 프랑스에서 1985년에 창설된 프랑스 이니셔티브(France Initiative)는 은행과 연합해 영세기업 창업을 지원했다.

스페인은 1990년대에 세계여성은행(Women's World Banking in Spain)을 통해 여성 영세 사업가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1980년대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빈곤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소액대출(Microcredit) 또는 소액금융(Microfinance) 차원의 포용적 금융이 상당한 성과가 드러난 점도 영향을 줬다.

2010년 유럽연합(EU)은 '유럽 2020 전략'을 발표하고 '스마트하고 지속가능한 포용적 성장(smart, sustainable and inclusive growth)'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2020년 2000만명 빈곤 탈출, 20~64세 인구 75% 고용'을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EU는 프로그레스 마이크로파이낸스(Progress Microfinance)라는 이름으로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와 유럽투자은행(European Investment Bank, EIB)에서 각각 1억유로씩 총 2억유로(2706억원)를 지원받아 자금을 운용했다.

유럽연합과 별도로 개별 은행과 기구가 추진하는 사회적 금융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트리오도스(Triodos) 은행은 전 세계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사회적은행(Social Bank)인데, 은행법에 따라 설립되고 운영되면서도 사람, 환경, 수익을 함께 고려하는 독특한 운영원칙과 사업구조로 잘 알려졌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 4만4000명이 모여서 정식 설립한 이 은행은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에 지사를 설립·운영 중이다. 현재 13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예금·대출 비중이 83%를 차지하는 등 일반 상업은행과 사업 포트폴리오가 비슷하지만 은행의 이념에 동의하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저리 예금 조달, 사회 및 환경 친화적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 협동조합의 최상위 기관인 협동조합UK(Co-operatives UK)는 2020년 11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회복을 위한 지역 커뮤니티 재건 펀드를 운영 중이다. 지역사회에서 커뮤니티 운영 사업을 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기업으로 전환을 계획 중인 기성 비즈니스 커뮤니티 등을 대상으로 최대 5000파운드까지 지원한다.

영국의 사회연대도매기금인 BSC(Big Society Capital)는 2500만파운드를 투입해 펀드를 조성하고 작년 4월부터 SIB(Social Investment Business)를 운영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입은 영국 전역 사회적 경제 기업과 자선단체 등이 수혜 대상이다. 펀드는 5년 장기융자를 제공하며 이자는 연 9%지만 처음 12개월 동안은 정부가 대납하고, 수혜 업체들은 이자를 내지 않는다. 이후 1~3년간은 6.5% 이율, 3~5년은 7% 이율을 적용한다.

프랑스 액티브(France Active)는 비영리 사회적 투자 회사로 공탁예금금고 등 공공기관과 민영기관 5곳이 출자해 만든 기구다. 이 기구는 매년 7500명 이상의 기업가를 지원하며 3억유로 이상을 조달해 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기업가 6만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대출을 무이자로 유예했다.

스페인에서는 저축은행들이 사회업무(Obra social) 차원에서 이익 25%를 의무 기부해 이민자·장애자·청년을 위한 소액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례도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19 대유행 초기에는 유럽의 사회적 금융이 코로나 피해 대응에 집중했다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작년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로부터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 정책 및 자금 집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