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려동물보험(펫보험) 활성화 관련 국회 입법과 대선 공약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펫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늘었지만, 전체 반려동물 대비 보험 가입률은 1%를 넘지 못했던 상황이다.
앞으로 펫보험에 대해 가입 의무화,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화, 제3보험 허용 등이 이뤄지면 보험 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정치권, 펫보험 활성화 공감대 형성… 법무부 “동물은 물건 아니야”
보험업계에 따르면 ‘동물병원 진료 항목 표준화’와 관련한 수의사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총 10건이 발의된 상태다. 진료비 사전고지제 등 진료비 투명화 조치가 주 내용이다.
또 여야 의원들은 지난달 반려동물진료보험법 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안은 정부가 심의하는 반려동물진료보험을 만들고, 가입한 보호자가 내야 할 보험료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다. 진료 범위에는 예방접종·구충제투약·건강검진·중성화수술 등 기초의료항목 비용이 포함된다. ’반려동물진흥원’(가칭)이란 전담기구를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에 설치해 진료표준화, 질병코드화, 진료비 실태 조사 등을 연구하는 방안도 들어갔다.
올해 초에는 펫보험을 제3보험으로 분류하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손해보험사들뿐 아니라 생명보험사들도 펫보험을 출시할 수 있다. 현재 펫보험은 손해보험으로만 분류돼 있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7월 민법상 물건의 정의에서 동물을 제외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대선주자들의 펫보험 공약도 나오고 있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반려동물 양육비를 낮추기 위해 “동물병원의 진료항목과 진료비를 표준화하고, 이용자가 가격을 미리 알 수 있도록 공시제도를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낙연 캠프도 반려동물 상생정책으로 반려동물 진료항목 표준화·진료비 공시제 도입 및 보험 활성화를 제안했다. 이미 후보직을 사퇴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화 공시제를 실시하고, 펫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아직 펫보험을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대선후보는 없지만, 본선에 돌입하면 관련 공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 등 총 7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 펫보험 활성화 정책에 관심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재 대한수의사회와 함께 반려동물 관련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9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 반려동물 의료보험을 도입하고 헌법에 동물보호 조항을 넣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었다.
◇ 1000만 반려인 시대에도 ‘비싼 보험료’ 탓에 관심 저조
국민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1000만 반려인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그동안 펫보험에 대한 반려인들의 관심도는 낮은 편이었다. 삼성화재 ‘애니펫’, 현대해상 ‘하이펫애견보험’, DB손해보험 ‘프로미반려동물보험’, 메리츠화재 ‘펫퍼민트’ 등 주요 손해보험사들이 상품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손해보험사의 반려동물(개, 고양이) 실손의료비보험 계약 보유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만3621건이다. 국내 반려동물 추정치(860만 마리) 대비 0.4%에 불과하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은 10~20% 수준이다.
펫보험 가입이 저조한 이유는 보험료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지난해 9월 전국 만20~59세 남녀 중 현재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는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44%가 펫보험 가입(갱신) 의향이 없는 이유로 ‘가격대(보험료) 부담(44%)’을 답했다. 다만 응답자의 60%는 향후 펫보험에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펫보험 보험료는 반려동물의 종류와 연령에 따라 다양하지만, 연간 약 50만원에서 100만원 수준이다. 월 부담 기준으로 따지면 최소 4만원에서 8만원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펫보험의 보장범위가 좁아 반려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 상품도 1년 단위 갱신형 상품 위주에 노령동물 가입은 제한되는 등 까다롭다. 특히 반려견이 잘 걸리는 슬개골 질환의 경우에는 보험사에 따라 보장 여부가 달라진다.
보험사가 펫보험 보험금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은 동물병원의 동일한 진료행위에 대한 진료비가 상이, 손해율의 체계적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탓에 그간 보험사들은 펫보험 보장 범위를 넓히지 못하고 마케팅에도 소극적이었다.
김세종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펫보험은 그동안 보험사 입장에서 진료비를 예측하기 어려워 상품을 공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라며 “관련 법안이 나온다고 갑자기 시장이 커지지는 않겠지만, 꾸준한 정책적 지원이 있으면 경쟁력 있는 다양한 상품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