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이 리스크가 크고 역(逆)마진 우려가 큰 200만~300만원대 서민 전용 소액대출 취급 규모를 줄이고 이 자리를 마진이 좋은 중금리 대출 상품으로 채우고 있다. 시중은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저축은행으로 수천만원을 빌리려는 고신용자들이 몰리자, 정작 이전부터 저축은행을 이용했던 저신용자들은 수백만원 수준의 급전도 구하지 못한 채 밀려나는 모양새다.
20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공시한 저축은행 79개사 소액대출 잔액은 올해 1분기(3월 말) 기준 882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813억원보다 0.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액대출은 보통 300만원 이하로 단기간 빌리는 자금을 말한다. 금리가 법정 최고 수준인 20%에 달할 정도로 높지만, 따로 담보를 잡지 않고 신청 당일 빌릴 수 있어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나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같은 기간 총 대출 취급 잔액은 지난해보다 22% 늘어난 81조92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저축은행 전체 대출시장은 20% 넘게 성장했지만,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서민전용 대출상품인 소액대출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해 대비 0.15%가 늘었지만, 전체적인 추세를 보면 소액대출 규모는 2015년 이후 꾸준히 줄고 있다. 2015년 말 당시 1조1000억원에 달했던 소액대출 규모는 2016년 1조원으로 줄었다가 2017년 9108억원을 기록하며 1조원 벽이 무너졌다. 2018년에는 7692억원으로 급감했다가, 2019년 들어 잠깐 9003억원으로 반등했지만, 지난해 다시 88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전체 대출에서 소액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7%에 그친다. 2017년 1.53%를 기록하고 나서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소액대출은 돈이 급한 저신용자가 사용하다 보니 연체 부담이 다른 상품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소액대출 연체액은 작년 1분기 583억3400만원에서 올 1분기 617억9500만원으로 6% 늘었다.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수요가 충분하다면 굳이 소액대출 규모를 늘려 건전성을 해칠 필요가 없다.
특히 지난달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저축은행들은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고금리 대출 상품을 줄이고, 중금리(연 6~18%) 대출 상품을 늘리며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법정최고금리는 지난 7월 24%에서 20%로 내려갔다. 2018년 최고금리를 연 27%에서 24%로 낮춘 지 3년여 만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소액대출 대부분이 최고금리로 진행되는데, 3년 전까지 27%였던 소액대출 금리가 지난달부터 20%로 낮아졌다”며 “신용점수 630점 이하(6등급 이하) 차주를 상대로 20% 금리를 3개월 동안 받는 상품과 신용등급 3등급 이상인 차주를 상대로 2년간 12%를 받는 상품이 있다면 금융사 입장에서는 두 번째 상품을 고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수익성만 쫓는 영업 방식이 금융기관의 사회적 역할에 부합하느냐’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금융지주계열 저축은행은 이 점을 감안해 최근 소액대출 취급 규모를 크게 늘렸다.
신한금융지주 계열 신한저축은행은 지난 2018년 말 소액대출 취급 규모가 79억원에 그쳤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해 현재 327억원으로 313%(248억원) 증가했다. 하나저축은행도 30억원을 밑돌던 소액대출 취급규모를 올해 3월 말 167억원으로 늘렸다. KB저축은행도 2019년 말 72억원에서 올해 3월 말 156억원으로 소액대출 규모를 키웠다.
이여정 금융개발원 연구위원은 “저축은행은 대표적인 서민 금융기관이고,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취약차주를 포용해 대출 사각지대를 줄이는 게 설립 취지”라며 “금융지주계열 저축은행은 지주사 핵심인 시중은행과 소매금융(리테일) 부문 연계 영업 면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저축은행들보다 유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