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우려로 글로벌 증시가 휘청이는 가운데 국내 증시 낙폭이 두드러진다. 연간 기준으로는 미국 증시와 유사한 흐름이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에 비해서는 유독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제 구조, 가계 부채 우려 등이 상대적 저평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달러 환율이 13년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넘어선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66.12포인트(2.74%) 하락한 2342.81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지난 20일 기록한 연저점인 2372.35를 이틀 만에 새로 썼다. 종가 기준 2020년 11월 2일(2300.16) 이후 1년 7개월여 만의 최저치이기도 하다. 같은 날 코스닥지수도 4% 넘게 빠지며 연저점을 경신했다.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을 합친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64조원 이상 증발했다.

최근 국내외 증시 대부분은 약세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서다. 연준은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22일(현지 시각)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물가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금리 인상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들어 전날까지 코스피지수는 12.8%, 코스닥지수는 16.4%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9.0% 하락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와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각각 8.5%, 7.6% 하락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 가권지수가 8.7% 하락했고, 홍콩 항셍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는 각각 4.1%, 1.9% 하락하는 데 그쳤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2.5% 상승했다.

연간 기준으로 미국과 한국 증시 낙폭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나스닥지수가 24% 하락했고, S&P500지수와 다우지수는 각각 21.6%, 16.7% 떨어졌다. 아시아 증시에서 코스피(-21.7%)와 코스닥지수(-28.8%) 모두 20% 넘게 하락한 반면 홍콩 항셍지수는 9.6%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일본 닛케이지수와 중국 상하이지수가 10%대 약세를 기록했고, 대만 가권지수는 17% 밀렸다.

증권가에서는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시기인 만큼 제조업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약세)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에 속도가 붙는 가운데 증시 주도주인 반도체, 자동차 등 업종이 수출 지표 악화 우려 속에 변동성을 키우는 상황이다. 반대매매, 가계 부채 리스크도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에 대해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6월 낙폭과 속도는 당황스럽다”며 “6월 중순 들어 우리나라와 대만 증시 약세가 두드러졌고, 특히 반도체 섹터가 약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침체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수요 감소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증시를 빠져나가는 외국인 투자자 자금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외국인은 올해 초부터 전날까지 국내 증시에서 19조1059억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기관 순매도 규모가 8조원대에 머무르고, 개인은 27조 넘게 순매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15거거래일 중 14거래일은 순매도했는데, 그 규모는 5조원을 웃돌았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차액결제거래(CFD)를 비롯한 반대매매 출현, 북한 지정학적 리스크, 최근 개선되고 있는 중국 경제 상황과 한국의 디커플링 등이 낙폭 확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면서도 “기존 예상 범위를 벗어난 급락은 내부적인 수급 요인과 그에 따른 변동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빚투’(빚내서 투자)로 인한 반대매매 규모가 증가하고, 가계 부채 리스크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반대매매는 투자자가 증권사에 돈을 빌린 뒤 만기 내에 갚지 못하면, 고객 의사와 관계 없이 주식을 강제로 일괄 매도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4~5% 수준을 유지하던 미수금 반대매매 비율은 최근 들어 10%를 웃도는 상황이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팬데믹 랠리는 대부분의 투자자에게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줬다”며 “주가 상승과 동시에 신용융자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용융자는 주가가 오르는 구간에서는 탄력을 높이지만, 반대로 하락하는 구간에서는 악성 매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증시 분위기를 반전시킬 요인이 부족한 가운데 신용융자에 따른 반대매매가 변동성을 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은 22일 ‘2022년 6월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높은 가계 및 기업 부채비율을 리스크로 꼽았다. 보험, 증권사 등 비(非)은행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건전성이 악화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은은 취약 가계나 부동산 관련 대출이 많은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 위험도 경고했다. 금융 시스템의 단기 안정성을 나타내는 금융불안지수(FSI)는 3월부터 ‘주의’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