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1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는 미·중 양국 사이가 우호적이고, 합리적일 때만 실현 가능한 약속이었습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馬雲·54) 회장은 19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먼저) 두 나라의 우호적인 무역 관계라는 전제를 파괴했다"며 미국 내 일자리 창출 계획을 폐기하겠다고 말했다. 마 회장은 작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 소상공인·제조 업체를 지원하고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총 2500억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중국산(産) 제품에 관세 폭탄을 투여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세계 IT(정보기술) 업계에서도 마 회장의 최근 행보가 화젯거리다. 지난 10일 내년 은퇴를 발표한 마 회장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에 나서 정부를 두둔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IT 업계에서 "마 회장이 알리바바의 미래를 위해 중국 당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發 무역 전쟁, 20년 갈 것", 날 선 발언 쏟아내는 마윈

마 회장은 지난 18일 중국 항저우에서 연 투자자 포럼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에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무역은 무기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써야 한다"며 "미국이 시작한 무역 전쟁이 20년 이상 지속되면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다. 반면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이번 사태는 결코 중국에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라며 "유럽, 남미, 러시아 같은 새로운 시장으로 무역의 폭을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19일(현지 시각)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2018 컴퓨팅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마 회장은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해 하나의 경제권을 구축하자는,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도 적극 옹호하고 있다. 은퇴 발표 다음 날인 11일 중국·러시아 정부가 공동 개최한 '제4회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양국의 기술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부펀드와는 합작 회사를 설립하고 현지 전자상거래 시장에도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제조업 육성 대책인 '중국 제조 2025'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19일 항저우에서 연 컴퓨팅 콘퍼런스에서 자사의 첫 인공지능 반도체인 '알리NPU'(뉴럴프로세싱유닛)를 내년에 공개하고 제조업 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100년 이상 가는 알리바바 만들기 위해 중국 정부와 발맞추기?

마 회장이 중국 정부의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는 배경에는 알리바바가 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알리바바를 100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가 필수다. 자칫 중국 당국에 찍혔다가는 방대한 내수를 기반으로 한 알리바바의 비즈니스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안방보험, 유통·호텔 업체인 HNA그룹, 부동산 업체인 완다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마 회장이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인수했다가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고 조기 은퇴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많다.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의 편에 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부 압박 논란에 대해 18일 투자자 포럼에서 "공산당 간부들과 정부 관계자로부터 건강이 안 좋은 것이냐, 고민이 있는 거냐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은퇴는 스스로가 오랫동안 계획해 온 수순이었다"고 반박했다. 미국 코넬대 신흥시장연구소의 루르드 카사노바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기업들에 그동안 산업 육성의 이름으로 지원해왔던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 회장에게는 미국에 맞서 적극적으로 중국의 경제정책을 지원하고 이를 세계 무대에 알리는 역할을 원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