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달러선을 넘어섰던 국제유가가 큰 반락 없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유효한 가운데 주요 산유국들이 있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 급등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산유국들의 감산 효과와 시장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상승 추세가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사우디 지정학적 이슈, 유가 급등 ‘트리거’로

최근 3개월 간 국제유가(WTI)를 나타낸 그래프.

최근 국제유가가 급등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WTI 12월물은 전날보다 1.71달러(3.07%) 급등한 57.35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2.20달러(3.54%) 상승한 64.27달러를 기록했다. 모두 지난 2015년 6월 이후 2년 반 만에 최고치였다.

유가가 급등한 배경의 중심에는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었다.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부패위원회는 부패 척결을 이유로 왕자 11명, 현직 장관 4명, 전직 장관 등 수십 명을 체포했다. 이는 사우디의 제1 왕위계승자인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세자의 왕위 계승을 위한 권력 다지기가 진행 중인 것으로 해석됐다.

이 사태로 실제 사우디의 원유 공급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지정학적 긴장감은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했다. 데이비드 매든 CMC마켓 애널리스트는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권력이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세자로 옮겨가면서 유가는 상승세를 보였다”며 “살만 왕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을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우디는 이어 오랜 숙적 관계인 이란과 갈등이 빚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4일 예멘 반군은 올해 8월 사우디 연합군이 자행한 민간인 폭격을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사우디 수도를 공격했다. 이에 사우디는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을 조종해 자국을 공격했다고 비난했고, 이란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10일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 공급 당시 사용한 탄도 미사일이 이란산(産)이라는 증거가 포착되자 결국 사우디는 지도부가 있는 수도 사나에 공습을 실시했다.

중동 갈등 전개 과정에서 미국의 원유 재고가 증가하는 등 원인으로 유가는 소폭 등락을 보였지만, 여전히 50달러 중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투자은행(IB) 모간스탠리의 4분기 WTI,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인 56달러, 62달러도 넘어섰다. 13일 WTI 12월물은 56.76달러, 브렌트유는 63.16달러를 나타냈다.

◆ OPEC 전망 긍정적, 최고 ‘70달러’ 예상도…미국 동향 주시해야

이 가운데 OPEC은 원유 시장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OPEC은 이날 월간 보고서를 내고 올해와 2018년 수요 증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OPEC은 올해 원유 수요가 하루 153만배럴 증가하고, 내년에는 151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OPEC 회원국의 10월 하루 생산량은 전달 대비 0.46% 감소한 3259만 배럴을 나타냈다. 이라크,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알제리, 이란의 감산이 주요했다. 회원국들의 감산 이행률은 100%를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석유전시총회(ADIPEC)에서 “주요 산유국의 감산 이행률이 높아지면서 원유 시장 안정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세계 경제 성장 동력이 유가 상승의 강한 모멘텀(동력)이 됐다”며 “이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OPEC은 오는 11월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담을 갖고 감산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가 상승세에 대한 전망도 밝다. 영국계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는 “2014년 이래 가장 건설적인 유가 환경이 조성됐다”며 “브렌트 유가가 4분기 배럴당 평균 60달러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가 70달러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며 “사우디 정국 불안만으로 유가의 지속적 상승을 담보하기 어렵지만, 주요 산유국의 감산이 이어지고 있고, 미국 셰일오일 투자 열기가 이전에 비해 사그라들고 있다는 점 등이 수급 여건을 개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도 앞으로 유가 전망치를 50~70달러로 제시했다.

미국 오하이오주(州) 오클라호마에서 셰일가스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상승세가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동향을 주시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정치적 불안에 따른 유가 상승세가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 연구원은 “미국 원유 재고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 내 생산량이 사상 최대치를 돌파했고, 이에 따라 재고 감소 속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가는 OPEC 정례 회의 이후 55달러 내외에서 연말까지 안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내년까지는 배럴당 60~65달러 수준에서 완만한 상승 흐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가 상승이 미국 셰일 업계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2016년 유가가 반등할 때 약 3개월 시차를 두고 미국의 원유시추장비 가동건수 증가했다”며 “내년에도 미국 셰일 산업이 국제유가의 상단과 하단을 제어하는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이어 WTI가 배럴당 45~55달러 안에서 등락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