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한 특파원

"컴퓨터 비전과 융합 센서, 그리고 딥 러닝(deep learning)…. 자율주행차와 같은 방식으로 운용됩니다."

뉴테크 상품 소개가 아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인 아마존이 최근 선보인 오프라인 무인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의 작동 방식 설명이다. 대표적인 전통 비즈니스인 유통업이 하이테크 영역으로 진입하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혁신하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온·오프 라인 유통 간 대결은 온라인의 승리로 귀결되며 융합의 단계로 들어섰고, 오프라인 유통도 대변신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선 온·오프라인 유통의 대표 주자인 아마존과 월마트의 대결이 유통 산업 판도를 바꿔가고 있다.

딥 러닝 통해 오프라인 매장에도 도전하는 아마존

지난해 12월 아마존은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 신개념 식료품 매장인 아마존 고를 열었다. 일단 아마존 직원들만 사용하는 시범 매장으로 시작했지만 올해 영국 런던에 정식 1호 매장을 열 계획이다. 아마존 고는 외형상으로는 깔끔한 일반 식료품 매장과 다를 바 없지만 운영 시스템은 지금껏 세상에 없는 방식이다. 고객은 스마트폰에 깔린 앱을 통해 본인 인증 과정을 거친 후 매장에서 상품을 카트에 담은 후 그냥 퇴장하면 된다. 고객이 고른 상품은 컴퓨터 센서 등을 통해 자동으로 기록되며 물건 값은 고객이 미리 등록한 신용카드에서 자동으로 결제된다. 매장에는 계산대도, 계산원도 없다. 80~90명이 필요한 일반 대형마트와 달리 직원은 6명뿐이다.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도 있었는데 최근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아마존 고는 매장에서 어떤 상품이 언제 어떻게 팔려나갔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자동 시스템으로 상품을 보충하므로 진열 상품 수를 줄일 수 있고 매장 면적도 작게 사용하면 된다. 매장의 전산 관리 시스템은 그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소비 행태를 꾸준히 파악하고 학습해 상품 구성과 진열 등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미국 유통업계의 최근 화두는 온·오프 라인의 ‘융합’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인 아마존은 로봇이 물건을 분류하고 운반하는 오프라인 무인 매장 ‘아마존 고’를 선보였다(위 사진). 미국 유통업계의 전통적인 강자 월마트도 최근 드론을 이용한 배송을 선보이는 등 온라인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의 인기 식료품 중심 대형마트인 홀푸드마켓의 평방피트당 투자 비용이 387달러인 데 비해 아마존 고는 매장 크기에 따라 182~319달러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마존 고 덕분에 지난해 미국 소비재 판매 시장에서 5% 정도인 아마존 점유율이 2018년에는 7%로 높아지고, 소비재 성장 기여도는 지난해 51%에서 2018년 66%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소비재 시장이 100원 성장할 때 그중 66원이 아마존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이니 잠재력에 대해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는 셈이다.

오프라인 덩치 너무 큰 월마트, 변신 고통 커

몇 년째 호황이 계속되는 미국에서도 지난해 오프라인 유통 성적표는 부진했다.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 메이시는 올 들어 실적 부진을 이유로 1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 구조 조정을 단행하고 수익성이 낮은 100개 매장 중 68개 점포를 상반기 중에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유통업의 '대목'인 지난해 11~12월 메이시의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1% 하락하는 등 부진했기 때문이다. 전통 유통업체인 월마트 실적도 좋지 않다. 지난해 매출과 순익은 모두 전년보다 줄어들었다. 월마트는 지난해 초 미국 내 154개 점포의 문을 닫았고 올 들어서도 구조 조정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어디서든 평균 8km 거리에 월마트가 있다'고 자랑하는 월마트의 최대 강점 '근접성'도 무너졌다.

월마트는 이런 굴욕을 감수하면서 비축한 힘을 온라인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8월 '아마존보다 더 싼 가격'을 내세운 '아마존 저격수' 온라인 유통업체인 제트닷컴을 33억달러에 인수하고 제트닷컴 창업주 마크 로어를 전자상거래 총괄 CEO(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지난해 12월엔 온라인 신발 쇼핑몰인 슈바이(ShoeBuy)를 7000만달러에, 이달 들어서는 온라인 아웃도어 쇼핑몰 무스조(Moosejaw)를 5100만달러에 인수했다. 6개월 만에 온라인 쇼핑몰 3개를 인수한 것이다. 지난달 31일엔 마크 로어가 "2만개 이상 품목에 대한 무료 이틀 배송을 전격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아마존의 대표 브랜드인 '아마존 프라임'을 따라잡겠다고 선언했다. 아마존 프라임은 연간 99달러 회비를 내는 회원에게 주문 상품을 이틀 안에 무료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월마트는 '이틀 이내 배송'은 그대로 하되 연회비 혹은 비회원에 대한 무료 배송 기준 금액을 낮추는 방법으로 '가격 경쟁'을 선언한 상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월마트의 온라인 매출은 매 분기 10% 이상 성장하며 분투하고 있다. 세계 최강 물류 시스템과 함께 드론을 이용한 배송 시스템 개발 등 혁신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는 "전자상거래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지만 이 부분 매출을 늘리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털어놨다. 월마트의 온라인 매출은 전체 매출액의 5%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아직도 오프라인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혁신의 끝에서 사라지는 일자리 우려

아마존 고는 월마트가 폐점한 지역을 공략하기 좋은 사업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 고는 2015년 11월 시애틀에 1호점을 냈던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 북스'에 이은 아마존의 두 번째 오프라인 사업이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오프라인 서점을 '몰살'시켰다는 말까지 듣던 아마존이 굳이 아마존북스를 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온라인에서 얻은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응용하고, 다시 오프라인 서점에서 고객 동향을 파악해 온라인에 피드백하는 상호 상승 기법을 익히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1호점이 문을 연 지 1년 이상 지났지만 샌디에이고와 포틀랜드에 2, 3호점을 열었을 뿐 점포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아마존 북스를 통해 얻은 온·오프매장 간 연계 노하우가 아마존 고를 통해 꽃을 피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아마존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중심적 활동을 하는 매장을 개설해 소비자 지갑을 아마존을 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존 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뉴욕포스트는 '일자리의 종말(the end of job)'이라는 기사를 싣고 아마존 고를 "차세대 일자리 없애기 대표 선수(the next major job killer)"라고 썼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아마존 고가 시도하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식료품 매장뿐 아니라 다른 소매점에서 일하는 계산원 약 350만명의 일자리도 온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