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자영업자 대출이 가계부채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증가 속도가 가계대출보다 빠르고 생계형 대출이 많아 금리가 오르거나 불경기가 장기화되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화되면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등 다른 가계부채까지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 대출이 위험한 이유는 자영업자가 부도를 내면 사업자 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까지 도미노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가계부채의 가장 취약점이 바로 자영업자 대출”이라고 말했다.

◆올들어 6대 은행 자영업 대출 8.3% 증가… 가계대출 증가세보다 빨라

그래픽=이다희 디자이너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기업 등 6개 시중은행의 10월 말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214조2761억원이다. 지난해 말보다 8.3%(16조 4986억원) 늘어난 금액이다.

같은 기간 이들 6개 은행의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 포함)은 488조3642억원에서 526조327억원으로 7.8%(37조6685억원)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 증가세가 가계대출을 앞서는 것이다.

최근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시중은행들은 자영업자 대출을 꾸준히 늘려 왔다. 자영업자 대출은 담보·보증대출 비중이 높아 부실 위험이 적은 편이다. 대부분 소액 대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 기업대출보다 리스크 관리가 쉽다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자영업자 대출이 늘어난 것은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의 은퇴와 청년 실업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 후 창업에 나서고, 청년 실업에 시달리는 20~30대들이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하다 보니 관련 대출도 증가하는 것이다.

송재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퇴 세대가 증가하고 청년 실업률 문제도 지속되니 창업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장기불황으로 기존 자영업자들도 추가 운영자금을 대출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자영업자 대출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대선 이후 시장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국내 대출 금리도 급격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시중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11조원가량 늘어나게 된다. 자영업자대출이 대부분 금리 인상에 취약한 변동금리라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노형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가 계속 이어지면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나 과다채무자의 비중이 증가한다”며 “자영업자 가운데 특히 청년 및 고령층의 부채가 부실화할 위험이 있는 만큼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 무너지면 주택대출·신용대출까지 부실 번져”

조선일보DB

이자 부담에 시달리던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지면 결국 전체 가계대출 부실로 이어진다. 자영업자 대출은 기업 대출로 분류되지만, 가계 대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자영업자 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사용하거나 반대로 주택담보출 또는 신용대출을 받아 운영자금으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자영업자 대출의 20% 정도가 생활자금 등 다른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액 대출 비중이 많고, 대부분 취약 업종에 대출이 몰린 것도 부담스러운 점이다. 금융권 자영업자 대출 중 3억원 이상 고액대출 비중은 지난 6월 말 기준 67.5%에 달한다.

또 올 상반기 국내 12개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가운데 부동산·임대업종 비중은 40%나 된다. 이어 도소매업(16%), 숙박·음식업(10.5%) 등 경기에 민감한 업종 위주로 대출이 쏠려 있다.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자영업자 대출이 부동산 및 내수경기에 민감한 업종 위주로 구성돼 있어 향후 경기 침체나 부동산 경기 위축이 시작되면 건전성이 악화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며 “고액 자영업자 대출은 부실화됐을 경우 위험이 집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