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정부는 성인 자녀에게 세금없이 증여할 수 있는 금액(10년 누적 기준)을 1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조정했다. 그러다 2013년 세법 개정 때 증여세 면세점을 5000만원으로 높였다. 20년 만에 증여세 면세점이 2000만원 상향된 것이다.
같은 기간 신혼부부가 전셋집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4.2배 올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1994년 이전 결혼한 부부의 경우 전세 보증금으로 평균 2339만원을 쓴 반면, 2010~2015년에 결혼한 부부는 9950만원을 지불했다. 증여세 면세점이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선비즈는 증여붐 명암 기획을 10회에 걸쳐 다루면서 마무리로 전문가 좌담회를 준비했다. 좌담회에는 김근호 KEB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장, 박준오 삼성생명 강남FP센터장, 황재규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세무사(가나다순) 등 3명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우리나라 증여세 면세점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증여세 신고자가 10만명(신고액 2조3628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생전 증여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에서, 증여세 면세 시점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면세점이 상향되면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증여가 양성화되고 내수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 "증여세 면세점 높여야… 용도 외 사용시는 처벌 강화"
౼증여세 면세점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김근호: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를 보니 전세 집 하나 마련하는 데 1억5000만원, 집 한 채 매매하는 데 전국 평균 3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최소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에 대해서는 증여해도 세금을 물리지 않아야 한다. 지금 성인 자녀에게 세금을 안 내고 증여 하려면 10년에 5000만원만 줘야 한다. 이 돈으로 전세도 구할 수 없다. 1억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면세점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준오: "10년에 5000만원을 물려준다는 것은 1년으로 치면 500만원, 한 달로 치면 40만원 수준을 자녀에게 준다는 것이다. 이 돈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증여하려는 사람들이 합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범위에서 더 많은 자산을 물려줄 수 없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౼우리나라 증여세율은 최고 50%에 달한다.
황재규: "한국의 증여세율은 전 세계적 흐름과 역행하고 있다. 캐나다나 호주는 증여세가 아예 없고, 2000년 이후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국가도 증여세를 없애고 있다.
증여세는 벌어들인 재산에 대한 소득세에 한 번 더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이를 없애거나 낮추는 것에 반대하는 진영은 상당수의 사업가들이 벌어들인 재산을 축소 신고해 소득세를 정확히 내지 않는 만큼 증여에 한 번 더 과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용카드 매출 등으로 소득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노출이 되는 상황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이 써줘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 내수 부양 차원에서라도 증여세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 유류분 제도 "유족간 소모적 다툼 유발" vs "형제간 분쟁 막는 장치"
౼증여세가 불합리하다는 지적 속에서도 증여는 꾸준히 늘고 있다.
김근호: "올해 상반기(1~6월) 상담의 30% 정도는 증여 관련 문의였다. 과세 인프라가 빡빡해지면서 이전에는 신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던 자산도 세무조사, 추징 대상이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무단횡단에 대한 적발 가능성이 커졌으니 차라리 신고를 하자는 것이다. 실제 국세통계 자료를 보면, 5억원 미만의 소액 증여가 전체 80~90% 수준을 차지한다."
황재규: "생전에 재산을 잘 분담해줘야 자녀들이 이를 발판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퍼지면서 증여 이슈가 공론화되고 있다. 꼭 부자가 아니라 중산층에서도 증여에 대한 관심과 실행이 늘고 있다."
౼유류분(遺留分·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상속권을 가진 유족에게 재산을 전혀 물려주지 않을 경우 등에 대비해 법으로 일정 재산은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 소송 등 증여 분쟁으로 골치를 썩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근호: "유류분 청구는 고인(故人)이 자신의 재산에 가중치를 두고 재산을 분배한 것에 대해 살아있는 자녀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것이다. 고인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또 유족들이 과거를 가지고 소모적인 다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은 제도다."
황재규: "유류분 소송의 긍정적인 면도 봐야 한다. 유류분 제도가 아예 없어진다면, 재산을 전혀 물려받지 못한 자녀의 형제간 소송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부모들도 나이가 들어 치매 등의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증여나 상속에 대해 의사결정을 했다면 분쟁이 생길 가능성은 더 높다."
박준오: "유류분 제도가 존치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어떻게 활용해 원활한 자산 분배가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변호사가 작성하는 유언 공정증서(공증)를 이용하는 것이다."
౼효도계약서, 유언대용신탁 등 증여 분쟁을 피하기 위한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다.
황재규: "부모가 해외에 나가 살고 있는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자녀들은 물리적 거리와 정보 부족 때문에 부동산을 잘 관리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신탁을 활용하면, 부모 사후에 부동산을 은행에서 관리하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외한 수익을 자녀에게 송금할 수 있어 검토해 볼 만하다."
박준오: "신탁상품에 절세 혜택을 주면 해당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단 부모는 자녀에게 이전해주고 싶은 자산을 신탁 안에서 투명하게 하게 해야 한다. 유류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김근호: "부부간 세금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부부간 증여 시 6억원에 대해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데, 면세점을 올리거나 없애야 한다. 부부의 재산은 공동 재산으로 봐야 한다. 미국도 부부간 세금이 없다. 그래야 부부간 재산 분할이나 불필요한 위장 이혼을 안 할 수 있다."
◆ "증여, 돈이 아니라 '정신'을 물려주는 일"
౼'좋은 증여' 혹은 '건강한 증여'란 무엇인가?
황재규: "좋은 증여는 본인이 일군 것을 자녀에게 물려줬을 때, 이를 발판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시드 머니(seed money)'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증여는 자녀가 이 재산에서 나오는 수익만 바라보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증여를 할 때 단순히 돈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의 정신을 물려줘야 한다."
박준오: "자산을 물려주는 데 그치지 말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까지 함께 물려줘야 한다. 금융자산의 경우 장기 상품으로 운용해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౼증여를 준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박준오: "여전히 꽤 많은 자산가가 증여에 대해 알아보는 것조차 꺼린다. 생전에 자녀들의 존경심을 끝까지 받는 게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서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주겠다'는 생각이다. 그 분들의 생각처럼 생전에는 자녀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후에 부모가 자산 이전을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뒤늦게 부를 이전했을 경우의 경제적 손실과 비재무적 손실을 미리 검토해야 한다."
황재규: "유언 같은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자녀들이 명절에 모일 때 반드시 본인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지 미리 이야기해두라고 권하고 싶다. 많은 고객들이 며느리나 사위 등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재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린다. 그렇게 아무런 대비 없이 사망하면 추후 가족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근호: "증여와 상속은 손바닥의 앞뒷면과 같다. 서로 보완 장치를 하는 것이다. 상속 공제라는 좋은 제도가 있기 때문에 자산 100%를 다 증여로 쏟아낼 필요는 없다. 60%는 사전 증여하고, 나머지 40%는 상속 시점에 자녀 가중치를 둬서 주면 된다.
증여를 하고자 하는 60% 또한 10년에 걸쳐 쪼개서 넘길 수 있다. 고객들에게 늘 하는 말 중 하나가 '증여는 공평하게, 상속은 가중치를 두라'는 것이다. 사위와 며느리라도 20년간 가정을 잘 꾸리고 살았다면 피붙이와 똑같이 대우해서 증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더 주고 싶으면 유언장에서 상속으로 가중치를 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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