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 포장 업체 태림포장은 지난해 5월 사모펀드(PEF) IMM 프라이빗에퀴티(PE)에 매각됐다. 매각 소식을 전해들은 업계 관계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창업주 정동섭(85) 당시 태림포장 회장이 40년 동안 일군 회사에 얼마나 애착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은 당초 가족에게 회사를 상속하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보유하고 있던 현금으로 수천억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상속세를 마련하려면 회사 자산 일부를 정리해야 하는데, 정 전 회장은 자산 매각으로 친자식과 같은 회사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PEF에 회사 경영권을 매각하는 방법을 택했다.
신동화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현금을 넉넉히 보유한 중소기업은 많지 않다”면서 “상속을 위해 지분을 정리하려고 보니 자칫 잘못하면 경영권을 잃을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경영권 승계를 제 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업 승계는 증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부동산이나 금융재산을 증여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셈법이 작용한다.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까지 받게 되면 가업 승계의 최고 세율은 65%에 달한다.
높은 세율 때문에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세금 부담으로 가업 승계를 포기하거나 경영이 위축되기도 한다. 선진국에 비해 대(代)를 잇는 장수기업이 적은 것도 가업 승계가 쉽지 않아서다.
가업승계는 경영인의 은퇴나 사망을 전제로 한다. 자녀와 가족, 회사 임직원들이 먼저 언급하기에 민감한 문제다. 경영인이 적극적으로 나서 준비하지 않으면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가업승계 또한 일반적인 증여와 마찬가지로 미리부터 계획을 마련하고 실천하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최소 증여 10년 전에는 가업승계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순기 상속전문 변호사는 “가업승계 과정에서 절세를 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가업승계를 하려면 장기적인 계획은 마련하고 전문가의 조력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中企, 가업승계 시 최대 500억원 증여세 공제…조건은 까다로워
기업 최대주주가 주식을 자녀에게 증여·상속하려면 ‘경영권 프리미엄 할증평가 제도’를 적용받는다. 지분율이 50% 이하인 주식은 20%, 지분율 50%를 초과하면 30%를 각각 할증평가해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상속세율이 최대 50%인 점을 감안하면, 증여 재산의 최고 65%까지 세금으로 내야 한다.
중소기업 대표가 500억원 규모의 회사 지분 50%를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세금만 160억원을 내야 한다.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상속세 부담이 커 기업승계 과정에서 지배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기업인은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으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재산가액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는 가업영위기간 10년 이상~15년 미만 시 공제 금액 한도가 200억원, 15년 이상~20년 미만은 300억원, 20년 이상은 500억원이다. 상속재산가액이 500억원 이하이고 20년 이상 운영한 가업이라면 상속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다만 가업상속공제는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상속받을 자녀는 일정 기간 이상 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하고▲상속인은 상속 개시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해야 하며▲상속세 신고 기간까지 임원으로 취임해야 하는 등 여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조건이 까다롭다보니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는 건수도 많지 않다. 가업상속공제 이용 건수는 2011년 35건에서 2012년 46건, 2013년 60건, 2014년 63건, 2015년 57건 등이다.
가업상속공제를 적용 받은 후 사후관리도 매우 까다롭다. 기업을 증여받은 자녀가 조기에 지분을 처분하거나, 고용 인력을 대폭 축소하면 세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사후관리 의무 위반 시 감면받았던 세금과 이자(연 10.95%)까지 추징한다.
안경섭 세무사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상당수 자산가는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이라며 “그러나 가업상속공제의 세제 혜택에만 주목한 나머지 사후관리 규정을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비상장 법인, 주식 평가에 따라 증여세 천차만별
비상장 법인의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인들은 주식 평가 어려움을 호소한다. 매일 시세가 나오는 상장 주식과는 달리, 비상장 주식은 평가에 따라 증여세가 천차만별이다.
비상장기업 증여는 주식가치를 미리 평가하고, 절세 방안과 재원 마련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비상장 주식도 시가 평가가 원칙이지만, 시가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보통 비상장기업은 보유 부동산과 매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주식 가격을 결정한다.
따라서 ‘언제’ 기업 주식 평가를 받을지를 상황에 맞게 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주식이 저평가되는 시점을 활용해 증여해야 절세할 수 있다. 배당이나 퇴직 정책, 특허권 및 상표권 등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주식 가치를 조정할 수도 있다.
가업승계는 세율이 높기 때문에 상속받은 재산으로 물납할 수 있다. 물납은 부동산과 유가증권(비상장주식 제외)의 가액이 상속이나 증여받은 재산가액의 50%를 초과하고, 상속세 납부세액 또는 증여세 납부세액이 1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 가능하다.
일정규모 이하의 개인사업자라면 법인 전환도 고려해볼만 하다. 법인사업자는 자산 분산 처리가 가능해 절세가 용이하다.
◆ 가업승계, 유언대용신탁 활용도 방법
보통 가업승계는 자년 한명에게 기업을 증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가업 승계 과정에서 증여를 받지 못한 자녀들이 유류분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유류분 분쟁으로 기업 지분으로 쪼개지면 수십년을 공들인 회사가 공중분해되고 만다.
자산가들은 최근 가업 승계를 위해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한다. 대리인(수탁인)에게 재산의 관리와 처분을 맡기는 게 신탁이다. 신탁을 활용하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 신탁이 유언 기능도 수행한다. 재산을 둘러싼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2010년 국내 최초로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출시한 KEB하나은행은 80여 건의 신탁 상품을 판매했다.
김근호 KEB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장은 “과거에는 자산을 금융사에 맡긴다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금융사를 재산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고 또 상속인의 분쟁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언대용신탁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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