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정택(57)씨는 지난 달 혼기가 찬 딸에게 보유하고 있던 주가연계증권(ELS)을 물려줬다. 가입 당시 금액은 8000만원이었으나,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중국H지수) 하락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영향으로 평가금액이 5000만원까지 줄었다.
이씨는 ELS 평가금액이 급감한 시점이 오히려 증여 기회라고 생각했다. 성인 자녀에게 금융자산을 증여할 경우 5000만원까지는 증여세를 면제해준다.
이씨는 “ELS는 만기까지 녹인(knock-in·원금 손실) 구간에만 진입하지 않으면 이익을 본다”며 “지금은 5000만원을 증여한 것이지만, 만기 때 1억원의 원금과 이자를 받게 되기 때문에 2000만원 정도의 증여세를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 지표가 하향곡선을 그릴 때 자산가들은 금융자산 증여를 준비한다. 세계 경제 침체로 금융상품 가치가 하락한 시점에 증여하면 세금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경기 침체기에 5000만원에서 5억원 정도의 소액은 금융자산으로 증여하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 가치가 바닥을 찍었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을 찾아 물려주는 것이 금융자산 증여의 핵심이다.
최근 브렉시트와 유럽 테러, 중국 경제 침체 등 세계 경제 불안정 국면이 지속되면서 주식과 지수 연계형 상품, 펀드 등 금융자산을 자녀에게 증여하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 2015년 국세통계 연보에 따르면 유가증권 및 금융자산 증여액은 2010년 5조4130억원에서 2014년 7조34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황재규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세무사는 “손실이 났지만 중간에 환매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을 가지고 있는 경우 증여를 택하는 사례가 많다”며 “지난 6월 24일 브렉시트로 세계 증시가 하락했을 때 금융상품 증여를 상담하는 고객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 지수연계형 상품, 증여 당일 평가금액으로 증여세 산정
자식에게 금융상품을 물려줄 때 10년간 증여액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까지는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5000만원 이상은 10~50%까지 누진제로 증여세가 적용된다. 현금 증여도 동일한 세율을 적용받는다. 단, 현금보다 금융자산 증여가 절세에 효과적이다.
우선 금융 상품은 향후 가치가 올라도 추가로 내야하는 세금이 없다는 이점이 있다. 가령 1억원짜리 금융 자산을 증여했는데 1년 뒤 평가금액이 2억원이 되더라도, 추가 증여세 부담은 없다.
최근에는 주가연계펀드(ELF)와 ELS의 증여가 증가하고 있다. ELS나 ELF를 보유한 자산가들은 평가금액이 저점을 찍었을 때 증여한다. ELS, ELF는 그날의 시세를 조회할 수 있는 상품이다. 증여 당일의 평가액이 증여세를 결정짓는다.
손실 중인 ELS나 ELF를 증여할 경우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성인 자녀에게 현금 증여하면 증여세를 450만원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마이너스 40% 손실 중인 ELS나 ELF를 증여할 경우 90만원의 증여세를 납부하면 된다. 세금 360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ELS와 ELF는 가입 당시 원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만기 때 3~8%의 수익을 보장해준다. ELS와 ELF는 만기 전에 자녀에게 증여해도 중간 정산없이 증여가 가능하다.
채권과 펀드는 증여 시점에 배당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낸 뒤에 자녀가 증여를 받게 된다. 자녀가 증여를 받은 이후에 생기는 배당소득에도 세금을 내야 한다.
◆ 하락 장에 활발해지는 주식 증여
주식 역시 증여 이후 가치가 상승했더라도 증여세를 추가로 내지 않아도 된다. 5000만원 상당의 유가증권을 성인 자녀에게 물려줬는데 1년 후 1억원까지 올랐다고 해도 증여세는 없다. 다만, 그날의 시세가 증여세 기준인 지수 연계형 상품과는 달리 증여 주식의 가치 평가는 증여일 앞·뒤로 2개월간의 종가 평균, 즉 4개월의 종가 평균으로 매겨진다.
주식 시장 하락 국면을 예상하고 주식을 증여했는데, 2개월 내에 주가가 급등했다면 세금을 더 내야 할 수도 있다. 주식 증여는 ‘증시 하락 국면을 보는 것’이 관건이다.
장기적으로 상황이 나빠질 것을 예상한다면 주식 증여를, 단기적으로 지수가 확 빠지고 다시 상승할 것으로 본다면 지수 연계형 상품 증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물려줬는데, 가치가 계속 올라 절세를 할 수 없게 되면 증여를 취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증여세 신고기한(증여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3개월) 내 증여재산을 반환하는 경우 증여세를 물지 않는다. 현금이나 예금 등은 기한 내 반환하더라도 증여 취소가 되지 않는다.
차주용 NH투자증권 WM리서치부서 세무사는 “증여 이후 주가가 급등했다면 증여 당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3개월 이내에 증여를 취소하고 시기를 봐서 다시 증여를 하는 것이 좋다”며 “그 돈은 부모가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부모마음 알아주는 ‘종신연금형’... 물려준 돈, 자식이 못 건드려
증여를 고려하는 부모들이 가장 많이 우려하는 부분은 자식에게 목돈을 줬다가 사업자금으로 날리거나, 흥청망청 쓰는 것이다. 애써 모은 자산을 자식이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싶은 부모들 가운데 보험 상품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받는 종신연금형 보험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부모가 계약자로 가입한 뒤, 수익자를 자녀로 설정해서 연금액을 증여하는 것이다. 자녀는 달마다 일정 금액을 받게된다.
정기금(연금보험 가입으로 매년 받는 금액) 증여시 적용되는 3.5%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증여액은 80% 내외 수준으로 평가된다. 가령 증여키로 한 10억원이 8억원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환산하는 것이다. 지난 3월 연금보험의 정기금 평가율이 연 6.5%에서 연 3.5%로 인하되긴 했지만, 여전히 절세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김희곤 교보생명 강남노블리에센터 수석웰스매니저는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받는 종신연금형은 해지가 불가능한 상품이라서 자녀에게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주고 싶은 부모들이 선택한다”면서 “일정기간은 이자만 받다가 원금이 나오는 상품이거나 종신연금형이 아니라 10년, 20년 확정연금형 상품인 경우엔 해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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