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가장 ‘핫(hot)’한 공화당의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공식적으로는 이반카 등 자녀들에게 한푼도 증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들이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철학이라는데, 내심으로는 증여세도 아까웠던 것 같다.

트럼프는 공약으로 증여세와 상속세 폐지(혹은 완화)를 내걸고 있다. 상속세를 없애야만 부의 이전이 원활히 이뤄지고, 부모로부터 돈을 건네 받은 젊은 부자들이 지갑을 열 것이라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트럼프는 전 세계에서 미국의 세금이 가장 많은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실상을 보면 한국 만큼 세금이 많은 나라가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 세금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근호 KEB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장은 “우리나라 상속·증여세 제도는 면세점도 낮고 할증도 많아 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며 “한국 사회가 2020년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데, 지금이라도 상속·증여세 면세점을 높여 내수 경기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딸 이반카 트럼프와 도널드 트럼프

◆ 한국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50%...세계 주요국 가운데 높은 수준

선진국들은 대부분 상속·증여세율을 소득세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폴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대만 등은 상속·증여세율이 10% 이하다. 네덜란드(20%)와 스페인(34%), 벨기에(30%), 핀란드(19%), 덴마크(15%) 등의 경우 상속·증여세율이 소득세율보다 훨씬 낮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의 국가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상속이나 증여를 통한 부의 이전을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간주하고 상속세율을 소득세율보다 높게 유지하는 3개국 중 하나다. 나머지는 일본과 헝가리다. 또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최대 50%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세율(26%)보다 배가량 높다.

최고세율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독일(50%)과 미국(40%)도 적용 구간을 훨씬 크게 잡고 있다. 세법상 더 많은 금액을 세금을 덜 내고 물려주는 것이 가능하는 의미다. 미국의 경우 개인이 일생동안 약 534만달러(2014년 기준, 약 59억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고 증여·상속할 수 있다. 증여를 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증여를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이 기준을 넘어서는 금액을 물려주면 18~40%까지 누진제를 적용해 세금을 부과한다.

미국에서는 평생 증여액과 더불어 연간증여면제액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증여세 납부와 신고 의무가 수증자 1명당 연간 1만4000달러(약 1600만원)를 넘지 않으면 면제된다. 가령 아버지가 자녀 2명에게 1명당 매년 1만4000달러를 증여하면 아버지는 매년 2만8000달러를 과세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그러나 1인당 1만6000달러를 증여했다면 아버지는 자녀 1인당 2000달러씩 총 4000달러에 대한 증여를 신고해야 한다.

독일은 최고세율이 우리와 같은 50%지만, 적용구간은 약 400억원으로 국내 기준인 30억원보다 13배 가량 많다. 물려주는 사람과 물려받는 사람의 친인척도, 개인적인 친소관계에 따라 과세 등급을 3등급으로 세분화해 세율을 차등 적용한다. 여기에 7~50% 사이의 7단계 초과누진세율구조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총 21단계의 세율이 적용되는 셈이다. 또 자녀나 배우자 1인에 한해서는 10년 합산 13억원을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다.

배우자, 자녀, 손주 등 각각 공제 한도가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딱 한가지 기준으로 공제 한도를 적용한다. 배우자거나 아니거나. 배우자에게는 한도없는 증여와 상속이 가능하다. 부부간의 재산 이동은 증여와 상속으로 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아름 모스컨설팅 공인회계사(미국)는 “이외에도 교육비와 의료비를 위한 증여, 정치단체에 대한 증여, 자선단체에 한 증여는 과세 대상에서 빠진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다희 디자이너

◆ 고령화 사회 먼저 진입한 일본은?

심각한 고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의 경우 생전증여를 권장하는 세법을 적용하고 있다.
고령자가 보유하는 자산이 다음세대로 원활하게 이동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다. 60세 이상의 부모가 20세 이상의 자녀·손주에게 재산을 생전에 물려주면, 증여 받을 당시 냈던 증여세를 상속 시에 공제해주는 제도가 그 예다.

자녀의 주택 구입 자금, 결혼비용, 교육·육아 자금 등에 대한 비과세 정책도 도입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실시한 자녀의 주택 구입 자금 비과세 조치(최대 1500만엔·약 1억4000만원)를 오는 2019년까지 연장하고, 한도 금액도 두배로 늘렸다. 즉각 효과가 있었다. 비과세 조치를 시작한 2010년에만 일본 수도권에서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이 22% 가까이 늘었다.

부모·조부모가 자녀나 손주에게 교육자금용도로 물려준 돈이라면 1500만엔까지 증여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도 지난 2013년 도입했다. 여기에는 학교 수업료, 등록금 뿐 아니라 학용품 구입비, 학원비, 통학비, 유학 시 발생하는 항공료 등도 포함된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 더해 지난해 결혼·육아자금에도 증여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더했다. 자녀나 손주에게 결혼·육아 자금으로 증여를 하면 최대 1000만엔 한도 내에서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이다. 예식비용, 신혼주택 월세, 출산 비용, 불임치료비, 육아도우미 비용 등을 결혼·육아 자금으로 쳐준다.

최고세율은 우리보다 높은 55%를 적용하고 있지만, 최고세율 적용 구간이 40억원으로 우리보다 크다.

◆ “증여·상속세율 낮추면 경제 지표 호전” 분석도

일각에선 증여·상속세율을 낮출 경우 세수 확보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세수 때문에 증여·상속세를 손댈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증여·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는데 가깝다. 지난 2014년 기준 총 조세 대비 증여·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의 경우 1.27% 수준이다.

오히려 증여·상속세를 낮출 경우 국내총생산(GDP)와 고용률, 저축률 등 경제 지표가 호전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속·증여세를 폐지할 경우 일자리는 최대 11만711개가 늘어나고 GDP는 0.28%포인트, 경상수지는 2.46%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 상속·증여세 제도를 독일 수준으로 개선할 경우 상속은 6.93%포인트, 소비는 0.35%포인트 증가한다. 반면 노동은 0.12%포인트 줄어든다고 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여·상속세를 개편하면 저축은 늘고 자본 유출은 줄어들어 자본이 증가한다”며 “또 경제 성장이 촉진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증여붐 명암]① 증여세 2조3000억 사상최대...'칠·건·부'가 뜬다 <2016.07.25>
[증여붐 명암]② "손주에게 건너뛰기했더니 세금 25% 줄었네"<2016.07.26>
[증여붐 명암]③ "먹튀 불효자 막아라" 효도 각서가 방패<2016.07.27>
[증여붐 명암]④ 돈 앞에선 가족愛란 없다...유류분 소송 10년만에 6배 늘어<2016.07.29>
[증여붐 명암]⑤ 금융 상품 증여는 '타이밍 싸움'...브렉시트는 부자들에게 기회였다<2016.08.02>
[증여붐 명암]⑥ 평생을 바친 회사 증여하니 수백억 세금 폭탄... 가업승계 절세 전략은<201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