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심의 배터리 산업 주도권이 2000년대 들어 한국으로 넘어왔지만 그 다음엔 중국으로 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국 업체들은 배터리 경쟁력의 원천인 소재 원료를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요. 생태계를 구성할 협력업체들은 한국에 거의 없고요.”

송호준 삼성SDI 기획팀 전략기획그룹장(상무·사진)은 배터리 산업에서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의 배터리 성장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중국 정부 주도의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삼성SDI, LG화학 등 한국 업체들이 주도하는 삼원계 배터리의 전기버스 보조금을 폐지하는 등 자국 배터리 산업을 보호하려는 노골적인 조치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송 상무는 삼성SDI 울산과 중국 시안(西安) 공장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SDI는 울산과 시안에서 연간 순수 전기차 20만대 분량의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SDI는 또 완성차 업체가 많은 유럽 지역에 새 공장을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 중이다. 그는 “고객사들이 많이 있는 독일 등 선진국도 고려 대상이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를 통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IT(정보통신) 기업들과의 협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삼성SDI는 BMW와 포르셰, 중국의 위통, 포톤 등 30여개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네비건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는 LG화학과 일본 파나소닉에 이어 배터리 경쟁력 3위에 오른 선두업체다.

송 상무와 6월 8일 만났다. 그와 주고받은 일문일답이다.

-최근 테슬라에 대한 배터리 공급 보도와 관련해 해프닝이 있었다.(니혼게이자이신문이 테슬라가 삼성SDI로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받기 위해 테스트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삼성SDI는 테슬라에 전기차 배터리가 아닌 가정, 산업용 에너지 저장장치(ESS)를 공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객사 또는 잠재적인 고객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완성차 업체들은 주요 부품 공급사를 선정할 때 한 두개 회사를 1차 공급업체로 두고, 2차 업체를 확보해 공급망을 다각화한다. 업계에서는 테슬라도 생산량이 30만~40만대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아마 파나소닉 이외의 공급업체를 선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예를 들어 전기차 한대당 50킬로와트 정도의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보면, 10만대를 만들려면 배터리 라인 5개가 투입돼야 한다. 30만대가 넘어가면 파나소닉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테슬라 이외에 전기차 업계를 주도할 업체가 또 있나.

"매킨지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전기차 시장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와 테슬라, 패러데이 퓨처와 같은 새롭게 진입하는 제조사, 그리고 구글, 애플, 텐센트, 알리바바와 같은 테크 자이언트들로 진영이 나뉜다. 어느쪽이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부품업체들의 사업 모델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아예 새로운 형태의 사업 구조가 생길 수도 있다. 카셰어링(차량 공유) 업체들이 변수다. 차가 스마트폰처럼 공짜 하드웨어가 되고, 그 안에서 렌털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사업 모델들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생태계를 만드는 건 어느 한 업체가 혼자하진 못한다. 일부 파트너끼리 진용을 짜게 될 텐데, 배터리 제조업체도 이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빨리 치고 올라오고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4대 소재다. 양극과 음극, 전해액, 분리막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4대 소재의 경우, 한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매우 약하다. 대부분이 중소기업이고 영세하다.

과거에는 소재 업계가 일본 업체들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형 소재업체 대부분이 중국 업체들이다. 배터리 시장에선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비용을 누가 더 낮출 수 있는지를 따지는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진다.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소재쪽에서 지원을 받다 보니 저변이 더 좋다."

-중국 업체들의 힘이 그렇게 센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만 봐도 중국 업체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중국 내에서만 리튬 가격이 1년 전보다 3배 올랐고,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도 2배 올랐다. 리튬은 매장량이 충분한 광물이지만, 채굴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 사이클형 광물이다. 중국 업체들이 리튬을 쓸어담다 보니 생산과 수요의 시간차에 따른 공급 부족 현상이 생긴 것이다."

-중국 정부의 역할이 컸던 거 같다.

"중국의 전기자동차 시장 규모가 중국 정부의 드라이브로 1년 사이에 4배 가까이 성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동차 대국이 아닌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뜻은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나라가 아닌 자동차를 잘 만드는 나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이 자동차는 내연기관차가 아닌 전기차를 가리킨 것이다.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다. 중국 정부가 배터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올해 1월 돌연 한국 업체가 주로 생산하는 삼원계 배터리의 안전성을 문제 삼아 이 배터리를 단 전기버스에 대한 보조금을 끊었다. 전기버스 가격에서 배터리는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지난해 하반기에 중국 현지 삼원계 배터리 공장을 완공했으나, 이번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의 경우 이 조치로 지난해 10월부터 가동한 중국 시안 공장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졌다.

-중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규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2가지 정도의 이유로 이런 규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내 1000개가 넘는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기술력이 부족해 안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이 전기차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역량이 부족한 업체들에 대해선 구조조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두번째는 우리나라 등 외자계 기업들이 품질, 안정성 등 경쟁력을 더 갖추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런 경쟁력을 갖춘다면 오히려 중국에서 사업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정부가 생태계 조성 등 정책적으로 준비를 잘한 것 같다. 한국에도 필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부 소재 업체들과 전략적 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만 그 기업을 육성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 다른 제조사들과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보니까 그렇다. 일부 업체들에 특혜를 주면서까지 함께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정부와 같은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

한국 정부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한 '2차 친환경차 보급 계획'에서 8만5700대의 전기차를 보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보급대수는 4900대에 그쳤다. 그럼에도 기존에 1500만원이던 전기차 보조금은 300만원 가량 줄었다. 중국 정부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산학 협력도 필요하다. 관련 연구를 할 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산업의 발전 단계에 따라 전공 선호도가 바뀐다. 반도체가 각광받을 때는 전자공학과가 떳듯이, 배터리도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주말인 토요일에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2000여명이 넘는 중국 학생들이 참여했다. 산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고급 인력과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기술의 화두는 무엇인가. 전기차가 미래에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술인가.

"배터리 기술의 화두는 에너지 밀도, 안정성, 가격이다. 이 3가지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것을 희생하는 것)' 관계를 어떻게 끊느냐는 것이다. 에너지 밀도는 주행 가능 거리와 직결되는데, 2~3년 내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우디와 공동 개발 중인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2018년에 양산되는데, 이 차의 주행거리가 내연차보다 더 긴 500km에 이른다. 가격도 중요한 부분이다. 내연기관차의 수준에 견줄만한 수준은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전기차가 꼭 우위를 점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수소차를 비롯한 각각 장점이 있는 기술들이 있다. 이 때문에 차의 세그먼트별로 우위를 점하는 기술이 다를 것으로 본다."


☞관련기사
[반값 전기차 전쟁]① 미국 전기차 전쟁 불붙었다 <2016.04.05>
[반값 전기차 전쟁]② '만년 배터리 2등' LG화학, 세계 5위도 내줄판<2016.04.06>
[반값 전기차 전쟁]③ 환경부 장관이 대형 가솔린 차 타는 한국<2016.04.08>
[반값 전기차 전쟁]④ 수소차에 '올인'한 현대차…수소차도 도요타에 밀려<2016.04.11>
[반값 전기차 전쟁]⑤ 보조금 들쭉날쭉, 충전소는 가뭄에 콩나듯...실종된 전기차 정책<2016.04.14>
[반값 전기차 전쟁]⑥ 애플, 테슬라 2인자 영입 '아이카' 개발?...판 커지는 전기차 시장<2016.04.22>
[반값 전기차 전쟁]⑦ 현대차 "320km 가는 전기차 개발"...600km 달리는 유럽차와 경쟁될까?<2016.04.27>
[반값 전기차 전쟁]⑧ GGGI 사무총장 "전기차 투자 당장 안하면 한국 낙오"<2016.04.28>
[반값 전기차 전쟁]⑨ "테슬라 어쩔거냐" 전기차에 1.3조원 쏟아붓는 독일<2016.04.28>
[반값 전기차 전쟁]⑩ 유럽 산유국 노르웨이는 "전기차 천국"...프랑스 "4년안에 200만대 보급"<2016.05.06>
[반값 전기차 전쟁]⑪ 제주 '전기차의 날'...충전기는 녹슬고, '기름먹는 하마' 득실<2016.05.12>
[반값 전기차 전쟁]⑫ LG, "1조원짜리 이란 전기차 사업 주도" <2016.05.13>
[반값 전기차 전쟁]⑬ 김상협 KAIST 교수 "현대차, 성공에 도취...한국 4차 산업혁명 낙오 위기"<2016.05.20>
[반값 전기차 전쟁]⑭ 일본 전기차 판매 한국 10배, 인프라는 8배<2016.05.24>
[반값 전기차 전쟁]⑮ "한국 전기자동차, 우리가 이끈다"... '대학생 창작자동차 대회'<2016.05.30>
[반값 전기차 전쟁]⑯ "아이오닉, 에너지효율 세계 최고, 도요타가 가장 강적"...이기상 현대차 전무
[반값 전기차 전쟁]⑰ "테슬라, 한국 배터리 시험중"...한·일 배터리 물밑 경쟁 '후끈'<2016. 06. 05>
[반값 전기차 전쟁]⑱ "친환경차 육성" 뒷북치는 한국 정부…말로만 시장 키우나?<2016.06.06>
[반값 전기차 전쟁]⑲ "3년 남았다. 한국 두려워 주저하면 주도권 뺏긴다"...토니 세바·김상협 교수 대담<2016.06.11>
[반값 전기차 전쟁]⑳ 중국, 세계 1위 전기차 생산국 변신…"외국기업은 막고 자국산업 육성"<201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