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전기차 ‘쏘울EV’를 타는 직장인 김모(40)씨는 주말 저녁 경기도 파주에 있는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가 낭패를 봤다.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 가능거리가 20km로 서울 마포구에 있는 집까지 돌아가는데 부족했다.
충전소를 찾던 김씨는 파주 홈플러스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밤 12시가 다된 터라 홈플러스는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았다.
파주에는 홈플러스에만 전기차 충전소가 있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충전소는 경기 고양시 킨텍스 인근에 있는데, 파주에서 35km나 떨어져 차를 몰고 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씨는 차를 두고 집에 돌아간 다음, 홈플러스가 문을 여는 시간이 되어서야 전기차를 충전해 운전할 수 있었다.
김씨는 “충전 시설이 이정도로 부족한지 몰랐다. 서울에서는 충전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근교만 나와도 충전을 걱정해야 한다면 어디 겁나서 멀리 타고 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내에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충전시설 부족과 보조금 문제 등으로 선뜻 구매에 나서는 소비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현재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100곳의 급속 충전소가 있고, 주요 대형마트에도 충전소가 있지만 소비자들이 걱정 없이 전기차를 타고 다니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방으로 나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동네 아무데서나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 올까?
◆ 전기차 보조금 800만원까지 차이 나…신청절차·요건 ‘복잡’
전기차는 가솔린·디젤 차량과 달리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친환경 차량이다. 하지만 보조금이 지역마다 다르다. 기본적으로 전기차 구매자는 1200만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지만, 지차제에 따라 보조금은 들쭉날쭉이다.
전남 순천시는 전기차를 사는 시민 92명에게 8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올해 6월 출시 예정인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기본 모델 가격은 4000만원. 순천시민이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구입하면 정부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받아 반값인 2000만원에 살 수 있다.
반면 충북 청주시, 진천군, 광양시는 지자체 보조금이 없다. 이 지역 주민들이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구입하려면 2800만원을 내야 한다. 자동차 소비자들은 50만원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800만원이나 더 주고 전기 자동차를 살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충북 청주시에 사는 회사원 박모(36)씨는 “2000만원이면 전기차 구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겠지만, 800만원을 더 주고 살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여러 장의 동의서를 작성해야 하고 개인용 충전 시설도 설치해야 한다.
국내 전기차 충전소는 337개(2016년 1월 기준)뿐이다. 서울 42곳, 경기 57곳, 제주 49곳 등이다. 전국 주유소는 1만2400곳이다. 따라서 전기차 충전시설은 주유소의 3%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전기차를 타는 소비자는 집에 충전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충전기를 설치할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문제다. 주차장이 있는 단독주택이 아니면 충전시설 설치는 개인이 아닌 지역주민의 문제로 커진다.
아파트 거주자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충전기 설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입주자 대표가 없는 다세대 주택 거주자라면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 3분의 2가 동의해야 한다. 전기료는 사용자가 부담하면 되지만 공용 전기를 끌어쓰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한번 구입하면 최소 2년 동안은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수 없다. 이 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최초 구매시 받았던 보조금을 반납해야 한다.
한 자동차 판매인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며 전기차를 보급하겠다고 나선 정부가 차 주인이 바뀌면 보조금을 토해내라고 하는 정책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 전기차 충전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산업용 전기료의 3배인데 누가 타나
전기차 공공 급속충전시설은 올해 4월 11일부터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됐다. 공짜로 쓰던 전기를 돈을 내야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충전요금을 1킬로와트(㎾h)당 313.1원으로 책정했다. ‘1㎾h’는 전기 1킬로와트를 1시간 사용했을 때 전력량이다.
환경부는 “공공 급속충전시설의 전기료가 휘발유 가격의 44%, 경유 가격의 62%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의 연료비가 화석 연료보다 절반은 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료를 너무 비싸게 책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h당 국내 전력요금은 산업용(제조업) 107원, 일반용(영업·공공) 130원, 주택용(123원) 수준이다. 전기차용 전기료(313.1원)는 산업용보다 3배나 비싸다.
정부는 자체적으로 전기차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 민간 충전사업자를 육성해 부족한 급속충전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무료로 쓰던 전기차 충전시설이 당장 유료로 전환되자 전기차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의 경우 전기차 보조금이 많지도 않고, 충전 요금도 저렴하지 않다. 전기차의 장점이 사라졌다”며 “누구나 전기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버스전용차 진입, 공영주차장 무료이용 허용 등의 파격적인 혜택이 없다면 전기차 확산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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