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퍼가 밖으로 보여야 하는데 차체 왼쪽 부분이 살짝 튀어나왔네. 보완하면 될 것 같으니 조금 뒤에 다시 검사 받으세요.”
지난 27일 교통안전공단 주최로 경기도 화성에서 ‘2016년 국제 대학생 창작 자동차 경진대회’가 열렸다. 올해 7회째인 이번 대회에 국내외 33개 대학, 55개팀이 참여했다.
대회장은 미세먼지가 뿌옇게 끼고 습도가 높았다. 학생들은 몇 달 동안 공들여 만든 전기차의 제원 검사를 받느라 분주했다. 크기, 무게 등이 정해진 규격에 맞아야 제원 검사 뒤에 시작되는 경주에 참여할 수 있다.
안전경사각도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차량을 시험기 위에 올려놓고 35도 이상 기울였을 때 바닥에서 바퀴가 두 개 이상 뜨면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제원 검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4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조광상 자동차안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차량 특성에 따라 적절한 제어 전략을 짠 팀이 우승할 것”이라며 “모터 제어 전략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배터리 소모량은 어떻게 줄일지, 토크비는 어떻게 줄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MIP’는 제원검사에서 차체가 튀어나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자동차 공학과의 자동차 제작 동아리인 이 팀 이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Make the Impossible Possible)”는 뜻이다.
“마무리 작업 때문에 3일 동안 잠을 한숨도 못잤어요”
MIP 동아리 회장인 주재영 군은 “작년 11월부터 이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백지 상태에서 차를 만들기 시작할 땐 눈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주 군은 “수업 시간에 자동차 구조와 원리에 대해 배우지만, 실제로 자동차 제작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했다.
동아리 회원은 모두 50명, 대회 출전을 준비한 회원은 10여명이다. 모터 개수는 몇 개로 할지, 타이어는 큰 것으로 할지 작은 것으로 할지 컨셉을 잡고, CAD로 디자인한 뒤 차량을 만들기 시작한다.
“자동차도 여러 가지 구조가 있어 어떤 구조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이 컸습니다. 팀원들도 뭐가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를 때가 많죠. 동아리 선배들이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요, 여러 교수님들께 직접 여쭤보기도 합니다.”
주 군은 “설계할 때 제일 막막했다”고 했다.
전기차 만드는 비용은 얼마일까?
주 군은 “700만~800만원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팀 학생은 “모터랑 컨트롤러만 450만원이 든다”고 했다. 주최측에서 지원해주는 100만원, 학교에서 일부 지원해주는 금액을 빼면 나머지는 학생들이 부담했다.
“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용을 대죠. 저는 F1 경기장에서 기록 재주는 일을 하고 그 돈을 다 전기차 만드는데 썼어요. 자동차를 좋아하니까 하는거죠.”
4학년 김현두 군은 “동아리를 하면서 자동차가 더 좋아졌다.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것이 정말 매력 있다”고 말했다.
MIP 학생들은 한시간여 동안 줄로 차체를 다듬고 범퍼를 조정한 끝에 재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제원 검사 이후 ‘가속성능과 제동안전부문’ 경주와 ‘짐카나’ 경주가 이어졌다. 가속성능과 제동안전부문은 전기차가 150m를 주파하는 시간을 측정한 뒤 제동거리 30m안에 멈춰설 수 있는지를 체크한다. 짐카나는 곳곳에 설치된 장애물을 피하면서 지정된 경로를 가장 빨리 통과하는 팀이 우승하는 경기다.
가속성능과 제동안전 부문에서는 MIP팀이 8.62초로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MIP 부스 안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주 군은 “작년엔 모터 1개를 썼는데 올해는 2개로 늘린 덕분”이라며 웃었다.
국민대학교 “국민레이싱(KOOKMIN RACING)”팀은 많은 팀들의 기대를 모은 팀이다. 그들은 전기차 배터리 충전에 한창이었다. 결성 17년인 역사 깊은 자동차 제작 동아리다. 전기차는 5년 정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해외 대회에도 활발하게 출전한다. 동아리 회원은 90명, 10~12명 정도로 팀을 짜서 여러 자동차를 만든다.
4학년 곽상기 군은 “밤낮이 없다”고 했다. 곽 군은 1학년 때 부터 동아리 활동을 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제작을 포함, 해외 대회 두번, 국내 대회는 세번째 출전이다.
“방학도 반납하고 밤 새서 작업하느라 몸은 피곤하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아요. 좋아서 하는거니까요. 저는 드라이브 트레인 같은 자동차 움직임과 관련된 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 대회 출전 차량 제작에 8개월이 걸렸다. 곽 군은 “교수님과 선배들께는 물론 자동차 업체들에 직접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바디 제작에만 3000만원 가량 들었다.
최웅철 국민대학교 교수도 지도 겸 응원차 대회장을 방문했다. 최 교수는 “CFRP 소재를 사용해 차체를 일체형으로 만들었다”며 “가벼우면서도 안전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최신 기술이라 올해 처음 시도했는데내년에는 더 가볍게 만들어 미국 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런 전기차 경연대회가 있어 다행이에요. 안전 규정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외국은 제원 검사를 하루 종일 진행하고 경주는 다음날 합니다. 브레이크가 잘 마킹하는지, 프레임 굵기, 로케이지 등이 안전한지 꼼꼼하게 체크, 차의 자격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최 교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안전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 대학생들도 구슬 땀을 흘렸다. 몽골 학생들은 전기차, 인도네시아, 인도 대학생들은 하이브리드카 부문에 출전했다.
몽골 SMET 팀의 바트두식 군은 “올해 대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오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발전된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이번 대회에서도 다른 팀들이 차를 어떻게 만들었나 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웠습니다. 카본 소재 자동차는 몽골에서는 할 수 없거든요.”
인도네시아 대학생 온 콤하라 군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친환경차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요. 한국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10km를 가는 동안 연료나 전기를 얼만큼 쓰는지도 따진다는 점이죠. 내년 대회에도 꼭 다시 오고 싶어요”
권기동 자동차안전연구원 연구기획실장은 “차세대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들이 앞으로 산업 현장에서 우리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반값 전기차 전쟁]① 미국 전기차 전쟁 불붙었다 <2016.04.05>
[반값 전기차 전쟁]② '만년 배터리 2등' LG화학, 세계 5위도 내줄판<2016.04.06>
[반값 전기차 전쟁]③ 환경부 장관이 대형 가솔린 차 타는 한국<2016.04.08>
[반값 전기차 전쟁]④ 수소차에 '올인'한 현대차…수소차도 도요타에 밀려<2016.04.11>
[반값 전기차 전쟁]⑤ 보조금 들쭉날쭉, 충전소는 가뭄에 콩나듯...실종된 전기차 정책<2016.04.14>
[반값 전기차 전쟁]⑥ 애플, 테슬라 2인자 영입 '아이카' 개발?...판 커지는 전기차 시장<2016.04.22>
[반값 전기차 전쟁]⑦ 현대차 "320km 가는 전기차 개발"...600km 달리는 유럽차와 경쟁될까?<2016.04.27>
[반값 전기차 전쟁]⑧ GGGI 사무총장 "전기차 투자 당장 안하면 한국 낙오"<2016.04.28>
[반값 전기차 전쟁]⑨ "테슬라 어쩔거냐" 전기차에 1.3조원 쏟아붓는 독일<2016.04.28>
[반값 전기차 전쟁]⑩ 유럽 산유국 노르웨이는 "전기차 천국"...프랑스 "4년안에 200만대 보급"<2016.05.06>
[반값 전기차 전쟁]⑪ 제주 '전기차의 날'...충전기는 녹슬고, '기름먹는 하마' 득실<2016.05.12>
[반값 전기차 전쟁]⑫ LG, "1조원짜리 이란 전기차 사업 주도" <2016.05.13>
[반값 전기차 전쟁] ⑬ 김상협 KAIST 교수 "현대차, 성공에 도취...한국 4차 산업혁명 낙오 위기"<2016.05.20>
[반값 전기차 전쟁]⑭ 일본 전기차 판매 한국 10배, 인프라는 8배<201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