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의 뉴 삼성호’가 잇딴 암초를 만났다.

지난 달 31일,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통합 삼성물산 출범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회사의 인수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 가격이 낮게 평가됐다는 서울고등법원 민사35부(재판장 윤종구)의 판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은 ‘충격과 경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삼성물산의 의도된 실적 부진”, “국민연금의 정당한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주식 매도” 등 실적과 주가 조작으로도 들릴 수 있는 재판부의 판단까지 덧붙여져 합병 무효 소송과 추가적인 손해배상 등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하루 뒤인 1일에는 글로벌 광고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삼성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제일기획(030000)지분 매각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서울 이태원 제일기획 본사.

세계 3위 광고회사인 프랑스 퍼블리시스와 진행하던 제일기획 지분 매각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전격적으로 한화, 롯데와 화학·방산 ‘빅딜’을 성공했지만, 해외 기업과 지분 매각 협상에 실패함으로써 사업 구조재편 작업에 부담을 안게 됐다"고 보고 있다.

제일기획 주가 추이.

◆ ‘매각설’로 제일기획 주가 추락...가격 이견 커

기업 인수합병(M&A)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인 ‘가격 관리’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각설이 불거진 1월 중하순 제일기획의 주가는 2만원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6월 1일 주가는 1만6100원으로 20% 정도 떨어졌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프리미엄’을 얹어 팔아야 하는데 삼성 프리미엄을 잃을 것이란 시장의 불안감으로 주가가 추락했다.

제 값을 받으려는 삼성과 가급적 싸게 사려는 퍼블리시스의 이해 관계가 크게 엇갈렸다.

제일기획 주주 현황(2016년 1분기 보고서 기준).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두 회사가 생각하는 가격 차이가 (협상)결렬의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제일기획은 올해 2월 17일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다각적 협력방 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지난 15일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다각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했다. 오는 15일 3차 공시 예정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협상을 계속했지만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이 제작한 삼성전자의 갤럭시S7 광고 영상.

◆장기 물량 보장 이견 못좁혀

삼성 수뇌부는 제일기획 만으로는 글로벌 광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 지분 매각 등 협력을 통해 변화를 시도한 가장 큰 이유다.

제일기획 매각 후 삼성전자의 광고 물량을 얼마나 보장해줄 지에 대한 시각차도 컸다고 한다. 인수자인 퍼블리시스는 안정적인 광고 물량을 요구했지만, 삼성은 장기간 광고 물량을 보장해주는데 난색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스 레비 퍼블리시스 회장은 올해 4월 22일 기업설명회(IR)에서 “(삼성과의 협상이) 현재 정체기”라며 “협의가 쉬웠다면 이미 딜이 성사됐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과 수원삼성 블루윙즈 축구단.

삼성의 전략이 오락가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제일기획은 작년 12월 11일 스포츠단인 삼성라이온즈 인수를 발표했다. 스포츠 마케팅 역량과 보유 구단의 시너지를 활용, 명문 구단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이에 앞서 2014년 프로축구단(블루윙즈), 남자 프로농구단(썬더스), 여자 프로농구단(블루밍스)을 인수했고, 2015년 상반기 남자 프로배구단(블루팡스)을 인수했다.

광고업계에서는 제일기획 지분 매각설이 나오자 “그럴거면 스포츠단은 왜 인수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수자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관측이다.

지분을 팔겠다면서 해외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제일기획은 지난 달 19일 자회사 아이리스를 통해 영국계 B2B 마케팅 회사 ‘파운디드(Founded)’를 사들였다.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은 “파운디드 인수는 원래 계획했던 일로 별개의 문제”라며 선을 그었지만 지분을 팔려고 내놓은 회사가 다른 회사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발표에 의문을 품은 시각이 많았다.

재계 관계자는 “제일기획 매각은 ‘협상은 은밀하게, 몸집은 가볍게’라는 M&A의 기본 공식을 위반했다. 협상이 길어지면서 내부 직원 동요만 일어났을 뿐 제일 기획이나 삼성에 별 도움이 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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