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삼성, 안정 찾을까?’
이재용(49) 부회장이 ‘뉴 삼성’의 기치 아래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방산·화학 계열사를 비주력 사업으로 분류, 한화·롯데에 판 데 이어 삼성물산(건설부문), 삼성중공업, 제일기획 등이 다음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 ‘삼성 타운’은 비고 있다. 2008년 서초동으로 집결했던 삼성 가족들은 차례 차례 짐을 싸서 ‘삼성 사옥’을 떠났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서울 서초구 우면동, 중구 태평로 등으로 흩어졌다.
‘사옥 재배치’를 통한 업무 효율화라는 설명을 달았지만, 직원들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짐을 쌌다. 8년 전 ‘삼성 가족’들을 서초동으로 집결시키는데 수백억원의 이사비를 썼다. 이젠 ‘헤쳐 모여’ 하는데 또 수백억원을 쓰고 있다.
삼성물산(028260)건설부문, 삼성SDI(006400), 삼성전기(009150)등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들은 희망 퇴직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에서 실적이 부진한 CE(소비자가전)부문은 5000명 이상이 인력조정을 거쳤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 후 진행된 ‘군살빼기’는 ‘삼성 가족’의 삶을 많이 바꿔 놓았다.
삼성 임원들은 “직원 자르는 게 주업무"라 불평하고 있다. 20년차 삼성 계열사 직원은 “회사가 시키니 이사도 하고 소속도 옮긴다. 일할 맛이 안 난다. 동료, 선배, 후배들이 다 사라지고 있다. 불안하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삼성에 투자한 주주들도 불안하고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이재용 부회장 말 한마디에 주가가 출렁인다. ‘안정적인 우량주’가 ‘이재용 테마주’로 변질되고 있다. 춤추는 주가 만큼이나 삼성 안팎은 어수선하다.
언제쯤 안정을 찾을까?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의 종착점이 무엇인지, 방향이 어딜지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 강남 대표하는 금싸라기땅 위에 지은 사옥, 사무실 텅텅 비어
삼성그룹은 2008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일대에 세 개의 초고층 사옥을 건설하고 계열사를 입주시켰다. 이른바 삼성 ‘서초타운’이다. 서초타운에 있는 전자(43층), 생명(35층), 물산(32층) 사옥은 그룹을 대표하는 회사 임직원이 근무하는 일터이자 강남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작년 말부터 회사의 현장경영 방침에 따라 우면동 연구개발(R&D)센터와 수원디지털시티, 서울 태평로로 이사를 갔다. 지금은 전자 사옥에 삼성 미래전략실 임직원 300여명과 일부 계열사 직원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사무실 공사를 마친 층에는 금융 계열사 직원들이 이사를 오고 있지만, 많은 층이 현재 비어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삼성물산 서초사옥에서 근무하던 건설부문 직원들은 올해 3월 경기 판교 알파돔시티로 이사를 갔다. 삼성물산 상사부문 직원들도 올해 6월 서울 잠실 향군타워로 근무지를 옮긴다.
삼성생명 서초사옥의 경우 19~35층은 삼성이 쓰고, 나머지 층은 외부 입주사가 사용한다. 이 건물 1개층의 임대료는 연간 15억~20억원 수준이라고 입주사 관계자는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통째로 비운다고 가정하면 한달에 임대료만 100억원 정도의 손해가 예상된다. 이사 비용과 직원들이 업무 공간에 적응하는 유·무형의 손실까지 고려하면 출혈이 상당할 것이다. 사옥 재배치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삼성 임직원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 10개 계열사서 8000명 감원…삼성전자 CE에서만 5500명↓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 실시한 2016년 임원 인사에서 500명 안팎의 임원을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예년보다 혹독한 인사태풍 바람이 불었다.
삼성 계열사의 2015년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일반 직원들도 상당수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 10개 계열사는 지난해에만 직원수가 8000명 가까이 줄었다. 삼성전자는 직원수가 2014년 말 9만9382명에서 지난해 말 9만6898명으로 2484명(2.5%)이 감소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가장 많은 인력 감소가 지난해 일어났다.
삼성전자의 3대 사업부문 중 DS(반도체·부품)와 IM(IT·모바일)은 인력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늘었지만, CE(소비자가전)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말 소비자 가전(CE) 부문 직원수는 1만5926명으로 2014년 말(2만1511명)보다 5500명이나 줄었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3대 사업 부문 중 실적이 가장 부진한 소비자 가전이 군살 빼기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734명(6.4%)이나 줄었고, 삼성전기는 964명(7.5%)이 감소했다. 지난해 1조500억원의 적자를 낸 삼성엔지니어링은 전체 직원의 11.8% 수준인 815명이 줄었다.
삼성물산은 직원수가 884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옛 삼성물산 직원(8863명)과 에버랜드(옛 제일모직 패션부문 포함, 4304명)을 더하면 1만2967명이었는데, 지난해 말에는 1만2083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이재용 효과에 춤춘 주가…삼성SDS 지분 매각 후 35%↓
‘이재용 체제’에서 삼성 계열사들의 주가도 하락세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건희 회장 와병 전인 2014년 5월 9일 133만5000원을 기록했다. 올 해 4월 15일의 종가는 130만원으로 2년 전에 비해 소폭 하락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1월 110만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올 1분기 실적 호조 영향으로 최근 회복세를 탔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잠정 실적이 매출 49조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갤럭시S 7 출시와 환율 효과가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SDS는 한때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수혜주로 부상하면서 ‘황제주’로 불렸으나, 현재는 주가가 지지부진하다. 삼성그룹은 올해 1월 28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이 실시하는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삼성SDS 지분 2.05%(158만7757주)를 처분한다”고 밝혔다. 당시 삼성SDS의 주가는 26만1000원이었다. 올해 4월 15일 주가는 16만8500원으로 35% 이상 빠졌다.
시장에서는 당초 삼성SDS와 삼성전자의 합병 시나리오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세금을 내고서라도 삼성SDS 지분을 팔겠다고 한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17.2%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은 지난해 9월 1일 통합 첫날 주가가 17만원에 달했지만, 올해 4월 15일에는 14만2500원까지 하락했다. 상사·리조트·건설·패션의 사업 시너지 효과에 대한 의문과 부진한 실적이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상경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서 일반 주주와의 시너지 효과도 중요하다. 시장에 충격은 불가피하지만,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 판단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만약 투자자에게 시너지 효과가 나는 형태로 지배 구조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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