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9) 부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이 28일 모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룹의 기둥 기업인 삼성전자(005930)가 올해 1분기 좋은 실적을 냈다. 매출 49조7800억원, 영업이익 6조680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동기 보다 매출과 이익 모두 늘었다. ‘갤럭시S 7’과 반도체 사업의 활약으로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경쟁사인 미국 애플의 실적이 13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고, 1분기가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 예상 밖 선전이라는 평가다. 2013년(매출 228조원)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삼성전자가 올해를 기점으로 반등, 재도약을 노릴 수 있다는 희망섞인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포천 등 주요 외신들도 일제히 “갤럭시S 7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며 삼성전자 실적에 후한 점수를 줬다. 삼성그룹 임직원들도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룹 핵심 관계자들의 표정은 조금 다르다. 그룹의 핵심 삼각편대(물산, 금융, 전자)의 방향성이 아직 확실하지 않고, 주력과 비주력으로 나뉜 기업 임직원의 사기가 엇갈리고 있으며, 추가적인 구조조정과 사업 개편 작업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다. 아직 신중론, 관망론이 우세하다.
작년 9월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은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는 성공했지만, “아직은 한지붕 아래 따로 노는 네 가족”이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통합 삼성물산은 출범 후 첫분기(2015년 4분기) 회계 장부에 빨간 줄을 그었고, 올 1분기 실적은 더 후퇴했다.
삼성의 금융 계열사는 매각설, 사옥 재배치로 어수선하다. 증권과 카드는 선두와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 실적 개선을 이뤘지만, 2020년 목표(매출 4000억달러) 달성은 불투명하다. 내일의 먹을 거리를 빨리 찾지 않으면 ‘글로벌 1등 전자 왕국’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짙다.
◆ ‘의·식·주·휴’ 사업 다하는 삼성물산, 시너지 효과는?
삼성가 삼남매(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는 지난해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시켜 탄생한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그룹의 두 축인 전자와 금융을 아우르고 있다. 이재용(17.2%), 이부진(5.47%), 이서현(5.47%) 등 세 사람의 지분율을 합치면 28%가 넘는다.
삼성물산의 사업영역은 패션, 상사, 건설, 리조트, 바이오(자회사) 등 이른바 의식주휴(衣食住休)를 망라한다. 시가총액 25조원(국내 5위). 삼성전자, 한국전력,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다음이다.
삼성물산은 다양한 사업 영역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대했던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통합 후 첫 분기인 작년 4분기에 890억원 적자를 냈다. 올 1분기에는 434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상사와 패션에서 소폭의 이익을 냈지만, 건설에서 대규모 적자를 낸 영향이 컸다.
원자재값 하락, 해외 건설시장 부진 등의 여파로 주력인 건설, 상사 부문이 타격을 입고 있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바이오 사업의 성격상 단기에 큰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물산 주가는 통합 첫날인 작년 9월 1일 17만원까지 올랐지만, 올해 4월 27일 종가는 13만4000원으로 21% 이상 떨어졌다. 증권 시장에서는 삼성물산 주가의 부진은 실적 부진, 사업부간 시너지 효과 부재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통합 삼성물산은 성격이 다른 회사를 한데 몰아 넣어 사업 부문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너 일가의 승계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이기에 승계 절차가 마무리되면 일부 사업이 분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1등 아닌 카드·증권 어떻게?...지주사 전환 쉽지 않아
금융은 전형적인 내수 업종으로 시장 참여자는 늘고 있지만,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저금리 장기화와 경쟁 심화로 고객 확보 마저 여의치 않다.
삼성의 금융 계열사 중 카드와 증권은 작년 말부터 회사 매각설이 끊임없이 나왔다. 방산, 화학 사업까지 파는 마당에 삼성이 굳이 1등 회사도 아닌 두 곳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과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매각설이 나올 때마다 “소설 같은 이야기. 엉터리, 만화”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매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삼성카드의 국내 카드 시장 점유율은 3위다. 1위 신한카드, 2위 KB국민카드에 밀린다. 두 회사를 추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삼성카드의 작년 영업이익은 3842억원이다. 2014년(8654억원)에서 반토막 났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증권시장 호황으로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증권업계의 대형 인수합병(M&A)건인 대우증권, 현대증권 인수전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미래에셋대우와 NH가 덩치를 불리는 동안 삼성증권의 순위는 뒤로 밀렸다.
한 증권사 임원은 “카드와 증권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결국 최고 경영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카드와 증권을 팔 경우 생명과 화재가 남는데, 이것만 가지고 금융 사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37.45%)을 사들이자 ‘삼성이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본격화하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금융 계열사 지분 확보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55%) 정리도 삼성 입장에선 고민거리다.
◆ ‘매출 200조’ 삼성전자 ‘갤럭시 S7’ 판매 호조에 한숨 돌려…미래는 불투명
삼성전자의 실적은 삼성그룹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미친다. ‘갤럭시가 잘 팔려야 삼성 임직원이 웃고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 예상을 깨고 매출 49조7800억원, 영업이익 6조6800억원을 달성했다. 삼성 수뇌부는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이 일시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세적으로 이어질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애플의 1분기 실적 추락은 삼성전자의 선전 때문이 아니라 휴대폰 시장이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3년 228조원을 정점으로 2014년 206조원, 2015년 200조원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13%의 영업 이익률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뚜렷한 미래 먹거리가 없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조직 개편을 통해 전장 사업팀을 신설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을 뚫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창립 40주년을 맞아 2009년 11월에 발표한 ‘2020년 매출 4000억달러(454조원) 달성’은 현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삼성의 또 다른 고민은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의 지분 3.38%를 갖고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실적이 좋으면 지금의 경영 방식에 문제가 없겠지만, 실적이 부진할 경우 외국인 주주들이 지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용의 뉴 삼성’이 넘어야 할 과제는 많다. 재계의 눈이 이재용 부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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