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물산·전자·금융’을 주축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켜 ‘삼성가 삼남매 체제’를 공고히 한 데 이어 금융 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재계에서는 “올해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를 연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크게 세 축을 중심으로 삼성의 진용을 구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엘리엇 사태로 홍역을 앓았던 삼성이 무사히 이재용 체제 구축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삼성생명 중심 금융 지주사 전환 위한 포석
삼성생명(032830)은 28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삼성전자(005930)가 보유했던 삼성카드(029780)지분 전량(37.45%)을 1조5404억원에 인수했다. 삼성생명이 삼성카드의 1대 주주(71.86%)로 올라섰다.
삼성생명은 삼성카드의 지분 취득 목적을 “사업 시너지 확대 및 안정적 투자 수익 확보”라고 설명했다. 재계와 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한 장기 포석’이란 해석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최정욱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금융 계열사의 1대 주주이면서 지분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 인수는 이를 충족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중간지주사법 통과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추진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증권(11.1%)과 삼성화재(15%)의 1대 주주지만 추가로 지분을 더 인수해야 금융지주회사의 요건을 갖출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은 0.06%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1대 주주(16.4%)인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주식 19.3%를 갖고 있어 간접 지배가 가능하다.
◆ 금융사 매각설 잠잠해질까…올해 교통 정리 이어질듯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의 삼성의 금융 계열사는 최고경영자(CEO)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전자 계열사를 언젠가 정리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카드의 1대 주주가 되면서 금융 계열사 매각설은 상당 부분 사그러들 전망이다. 특히, 금융지주사 전환이 현실화된다면 삼성 입장에서는 굳이 금융 계열사를 매각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29일 국회에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통과되면 그룹 사업 재편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소규모 합병과 간이분할 합병 절차가 간소화된다. 소규모 법인 신설도 쉬워진다. 삼성처럼 지배구조 재편이 활발한 기업에 상당 부분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가령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소규모 합병이나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합병이 쉬워진다. 삼성SDI와 삼성전기의 합병,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도 예상 외로 쉬어질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1대 주주지만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4.1% 밖에 안되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든지 추가적인 지분 매입·매각은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의 지분이 적고, 삼성생명 역시 삼성전자 지분이 많지 않다. 향후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후속 작업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고,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합병해 최종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