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지난달 보셨던 차량을 이번 달에 150만원이나 할인해주는데 생각 없으세요?"

2일 회사원 김모(32·서울 등촌동)씨는 집 근처 한국GM 지점 판매원에게서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달 매장에 들렀을 때만 해도 별다른 할인 혜택이 없어서 망설이다 돌아섰는데, 이번 달에는 '휴가비 지원' 명목으로 차 값을 대폭 할인해 준다는 얘기였다. 김씨는 "가격이 10% 가까이 내린 건데, 마음이 상당히 흔들린다"고 했다.

계속되는 내수경기 침체로 6월 국산 신차 판매가 작년 대비 8.1% 줄어들자, 자동차 업체들이 대대적인 할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수익 악화를 우려해 '전국 정가(定價)'를 내세웠던 회사들조차, 다급한 마음에 금융비용 지원 등 각종 이유를 들어 비공식적으로 100만원 이상 할인해주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1일부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3년차에 접어들어 유럽산(産) 차량 가격이 수십~수백만원 내려가는 것도 가격 인하 경쟁에 불을 붙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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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定價)가 사라졌다

판매 실적이 작년 대비 25%나 떨어진 한국GM은 1600만~2300만원대 준중형차 쉐보레 크루즈를 150만원 할인하는 것을 비롯, 말리부·올란도·캡티바 등 주요 차종도 일제히 100만원씩 인하한다. 1000만원 초반 경차 스파크도 120만원 할인해 준다. 회사 측은 "대형 세단에 한해 300만원가량의 프로모션을 내걸었던 적이 있지만, 경차까지 포함한 전 차종 가격을 낮추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6월 내수 판매가 7% 줄어든 현대차도 전달보다 할인 폭을 넓혔다. 인기 차종인 아반떼를 30만원 할인해주고, 신차 출시를 앞둔 제네시스도 50만원 깎아준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150만원 할인한다. 판매가 10.5% 줄어든 기아차도 K3, 쏘렌토R 등 주요 차종을 20만원에서 최대 50만원 할인하고, K5 하이브리드는 250만원이나 깎아준다.

관세 인하 혜택 누리는 유럽차

국내 완성차 업체들을 한층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수입차 업체들 때문이다. 국내 수입차 판매량의 75%를 차지하는 유럽차는 지난 1일부터 가격이 평균 1%씩 내려간다. 2011년 7월 1일부로 한·EU FTA가 발효되면서, 발효 전 8%였던 수입 관세가 5.6%(1년차)→3.2%(2년차)로 단계적으로 인하돼, 이달부턴 1.6%만 적용받기 때문. BMW·벤츠·폴크스바겐 등 주요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1일 전(全) 차종 가격을 최하 30만원에서 600만원가량 인하해 새로운 가격표를 내걸었다. BMW 인기 모델인 3시리즈 디젤(320d)의 경우 종전 정가가 4810만원에서 4760만원으로 50만원 내린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차가 적어도 40만~50만원 인하된다.

폴크스바겐이 종전에 3110만원이었던 골프(1.6 TDI)의 신형을 출시하면서, 종전보다 120만원 싼 2990만원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관세 인하 역할이 컸다. 재규어는 관세가 인하되는 김에 종전 가격 거품을 빼기로 하고, 주력 세단인 XF(2.0 가솔린) 가격을 600만원 인하하기도 했다. FTA 수혜를 못 받는 닛산·혼다 등 일본차 업체들도 덩달아 주요 차종 가격을 200만원 이상 깎는 등 할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기계·산업팀장은 "경쟁 확대로 국내 자동차 시장 힘의 축이 소비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