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8’

기술(tech)과 예술(art)을 결합해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는 '데카르트 마케팅〈키워드〉'이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처음엔 차가운 이미지의 가전이나 IT제품에 감성적인 예술을 접목하는 마케팅에서 시작했다. 이젠 IT제품을 넘어 식품·생활용품·공사장 가림막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퍼져 나가며, 보다 폭넓은 개념인 '예술 마케팅'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 마케팅

예술 마케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제품에 기존 예술작품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해태제과는 2007년 식품업계 최초로 예술 마케팅을 적용, '오예스' 포장에 심명보 작가의 장미 작품을 새겨 넣었다. 회사는 5억원에 작품을 구매해 본사에 전시하고, 제품 패키지 활용을 위한 판권도 통째로 넘겨받았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단순히 먹는 과자를 넘어서 소비자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고 감성적인 욕구까지 충족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2008년부터 팝아트의 거장 키스 해링(Haring)의 작품을 탑재한 휴대전화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둘째는 유명 예술가 혹은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한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이다. 1975년부터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손잡고 '아트카 컬렉션'을 선보여온 BMW가 대표적이다. BMW는 앤디 워홀·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현대 미술의 대표적 아티스트들과 함께 지금까지 총 17대의 아트카를 내놨다.

삼성전자도 마시모 주끼(Zucchi)·앙드레 김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려넣은 가전제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예술작품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해 여성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할 만한 명품 가전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현장에 설치된 ‘벌거벗은 모나리자’ 가림막. 예술과 산업이 결합한 ‘예술 마케팅’이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셋째는 제품 디자인 자체로 예술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뱅앤올룹슨이다. 전자업체로는 드물게 국제적인 디자인상을 90회 이상 수상했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18개의 제품이 영구소장돼 있을 만큼 예술성 높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전자제품은 사용하지 않을 때 집안에 하나의 인테리어 작품이 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 1992년 3000달러에 판매한 '베오랩 8000' 스피커는 현재 4500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아이팟용 스피커 도크 '베오사운드8'은 출시 6개월 만에 2만5000대가 팔려 나갔다.

◇공사장의 가림막에도 예술 마케팅

건물 벽면이나 공사장 외벽에도 예술 마케팅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는 건물 벽면을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미디어 파사드'의 명소가 됐다. 서울스퀘어는 건물 벽면 LED 조명을 활용해 영국 팝아티스트 줄리언 오피의 '걷는 사람들'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 현장에는 벌거벗은 모나리자의 누드 그림이 그려진 가림막이 설치돼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모든 것을 보여주는 미술관'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미술관 측은 겨울이 되자 모나리자에게 목도리를 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빌딩 벽면에 한·일 비디오 작가들의 작품이 상영되는 모습.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아

그러나 이 같은 예술 마케팅이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프라다와 손잡고 내놓은 '제네시스 프라다'는 국내외 2000대만 한정 판매했지만, 매출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컨설팅회사인 리드앤리더 김민주 대표는 "예술 마케팅은 스포츠마케팅과 다르게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소비자의 관점이 양(量)에서 질(質), 상(像·이미지), 격(格)으로 점차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예술 마케팅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데카르트 마케팅

기술(tech)에 예술(art)을 접목한 마케팅 기법을 뜻하는 신조어. 차가운 첨단기술 제품의 이미지에 따뜻함을 입히거나, 유명 예술인과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의 감성을 만족시키고 제품의 이미지 상승효과를 거두려는 목적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