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롯데는 형님(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 한국롯데는 저(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로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일본롯데의 지분도 형님과 제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최근 쉴새없는 M&A(인수합병)와 공격경영으로 '롯데의 경영 DNA를 바꿔놓았다'는 평까지 듣는 롯데그룹의 '황태자' 신동빈 부회장이 마침내 '말'을 쏟아냈다. 그의 경영행보와는 달리, 그의 '말'은 지금까지 좀처럼 듣기 어려웠다. '자랑하기보다는 맡은 바 업무에만 충실하라'는 신격호 회장의 지론 때문에 롯데그룹 오너(owner) 일가의 육성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다.

신 부회장은 지난 17일 언론사와의 최초 육성 인터뷰를 조선일보와 조선경제i가 함께 만드는 경제·투자 전문 온라인매체 조선비즈닷컴(chosunbiz.com)과 가졌다. 멀리 영국 런던에서였다. 롯데그룹의 영국 투자설명회가 열린 유서 깊은 건물 스테이셔너즈 홀(Stationers' Hall)에서 신 부회장은 1시간 30분에 걸친 설명회를 직접 이끌었고, 투자설명회가 끝난 후 인터뷰에 응했다.

사진=런던 김덕한 기자 ducky@chosun.com

'차 한 잔만 마시자'로 시작된 인터뷰는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예정에 없었던 인터뷰였던 만큼 '종이 한 장' 준비하지 않고, 진솔한 말을 쏟아냈다. 지금껏 아무도 내놓고 말하기 어려웠던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나 신격호 회장과 관련한 내용, 보수적이었던 롯데그룹의 체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최근 몇 년 간 이뤄진 쉴새없는 공격적인 M&A(인수합병) 행진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문답이 이어졌다.

제2롯데월드와 관련해서 그는 "제2롯데월드 123층 고층빌딩은 채산성이 낮다며, 다른 안(案)을 아버지(신격호 회장)께 건의했다가 야단 맞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숫자(채산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회장님의 말에 지금은 동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 역시 국가 위상을 높이고 롯데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크는 데 초고층빌딩이 큰 기여를 할 것이며, 그건 숫자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데 뜻을 같이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롯데그룹의 '공격 경영', '글로벌 경영'과 관련해 "롯데그룹의 체질이 바뀐 건 롯데쇼핑을 공개한 게 결정적이었다"며,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구조 강화됐다"고 말했다. 또 "제조업 중심 경제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뀔 수밖에 없으며, 미국 대표기업이었던 GM보다 지금은 코카콜라가 더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시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유통·서비스 기업의 중요성이 강화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번 영국 IR의 성과가 좋았다"며 "롯데쇼핑 주식 유동물량을 늘리는 건 당장은 어렵지만 해외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 받아 저평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또 경기도 오산 롯데인재개발원에 '신격호기념관'을 만들고 있고, '신격호 어록'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정이 늦어진다며 인터뷰를 끝내자고 하는 주위의 여러차례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인터뷰가 끝난 후엔, "스테이셔너즈 홀의 도서관을 함께 둘러보자"고 기자에게 제안했다. "한국말에 서툴어서 잘 안 나서려 한다"는 등의 풍문이 얼마나 헛된 소문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소탈하고 인간적인 풍모가 짙에 풍겨지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1982년부터 88년까지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일했고, 4년 전 롯데쇼핑 상장 때에도 런던에 와서 IR을 했었다. 런던과 인연이 많은 것 같다.

"런던은 익숙한 곳이긴 하지만 올 때마다 늘 긴장된다. 4년 전 롯데쇼핑 상장 당시에도 주력 기업을 시장에 내놓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컸다. 당시 반응은 좋았고 상장도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이후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 아쉬웠다. 롯데쇼핑 상장 이후 리먼브러더스 파산 쇼크 등 세계 경제에 큰 위기가 있었지만 롯데쇼핑은 꾸준히 성장했고, 실적도 좋았다. 이번 IR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롯데그룹이 좀더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롯데쇼핑 주가는 2006년 2월 주당 40만원에 상장했지만 짧은 기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상장가 밑에 떨어져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20만원 밑으로도 떨어졌지만 최근엔 34만원 대까지 회복됐다.

―롯데쇼핑 주가가 마음에 부담이 되나.
"왜 안 그렇겠나. 롯데쇼핑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에도 쉬지 않고 성장했고, 실적도 좋았다. 경영자로서 경영실적에서는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주가가 상장가에도 못 미치고 있어 늘 마음이 무겁다."

―롯데쇼핑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보나.
"그렇다."

―시장에서는 롯데쇼핑의 대주주와 관계사들이 6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바람에 유동물량이 적어서 기관투자들이 뛰어들지 못해 주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걸 지금 당장 바꿀 수는 없다.(신격호 회장은 계열사 지분을 파는 걸 아주 싫어한다.) 롯데쇼핑의 사업구조에 대한 시장의 이해가 부족한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 다양한 사업부문이 있고, 세븐일레븐, 롯데카드 등 자회사의 지분도 상당 부분 가지고 있다. 롯데쇼핑이 다양한 업태의 사업을 하고, 또 자회사 지분도 가지고 있고 이런 복잡한 구조에 대해 시장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IR 반응은 어땠나?
"아주 좋았다. 최근 활발한 M&A와 해외 진출, 빠른 성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롯데그룹은 재작년 금융위기 때에도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했고, 최근 몇 년간 고속 성장을 하면서도 차입금이 자산 대비 50%를
넘지 않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주가도 좀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업 내용이나 성장성에 모두 자신 있다. 지금처럼 저평가 받을 이유가 없다."

배석했던 노병용 롯데마트 대표는 "그룹의 오너(owner) 경영자가 해외시장에 직접 나와서 IB(투자은행)를 상대로 오랜 시간 설명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며,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근무한 것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나.
"많은 도움이 된다. 우선 인간관계에 큰 자산이다. 아는 사람이 많고 당시 같이 일했던 펀드 매니저들이 사장, 회장이 돼 있다. 또 시장의 흐름, 국제 금융의 흐름을 읽는 눈도 배웠고, 기업의 가치나 전망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게 된 것도 그렇다."

-그동안 많은 M&A를 하면서 롯데그룹이 예전과 달리 결정 속도가 빠르고 과감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롯데그룹 M&A 일지 참조) 인수 대상 기업을 평가(evaluation)할 때 '이거다'하는 감이 오나.
"(웃으며) 그렇다. 그 회사 가치가 올라갈 것인지, 내려갈 것인지 어느 정도는 감이 온다."

―지금까지의 M&A를 평가해보면 다 만족할 만한가. 실패한 건 없나.
"최선을 다했고, 지금까지는 최선의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M&A가 성사되고 나면 시장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반응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반응들은 정확한 데이터와 전망을 가졌다기보다 다분히 주관적인 면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20건 이상의 M&A를 했지만 문제가 된 건 없다고 본다."

―M&A를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
"비싸게 사면 안 된다는 거다. 쌀 때 사야 한다.(웃음) 이런 소박한 논리는 개인들의 주식 투자에도 똑 같이 적용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주가가 올라 버블이 가득 찼을 때 투자에 나선다. 주식이 많이 올랐을 때 '나는 주식 안 하는데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 때문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안 사려고 할 때 주식을 사야 하는데 기업 인수도 비슷하다. 지난번 대우인터내셔널은 그 가격에 사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 사지 않았다. 과열된 상황에서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드는데도 무리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좋지 않다."

―롯데그룹의 M&A를 두고, 시장에서는 롯데가 비싸게 샀다고 평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거의 대부분 싸게 샀다고 생각한다. 작년 중국 대형마트인 타임즈를 인수한 것은, 계약은 작년 12월에 했지만 협상은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상반기에 했다. 그만큼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마크로(네덜란드계 대형마트) 인수도 성공적이었다. 롯데홈쇼핑(우리홈쇼핑 인수 후 이름을 바꿨음)도 시장에서 비싸게 샀다고 했던 대표적인 사례지만 매년 50%씩 성장시켰다. 그만큼 큰 시너지를 예상했고, 적중한 것이다. 또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M&A, 신규 사업에 꼭 진출해야 하는 경우의 M&A는 시장에서 비싸다고 평가하더라도 인수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보다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부친(신격호 회장)과 마찬가지로 신 부회장도 좀처럼 외부활동을 잘 하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기도 한다.
"은둔의 경영자라면 어떻게 영국까지 와 IR을 하겠나.(웃음)"

―요즘은 롯데가 예전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고 공격적으로 나와서 '신 부회장이 롯데의 경영 DNA를 바꿔놓았다', '준비된 황태자다' 같은 호평도 나온다. 그런 평가를 들으면 어떤가.
"평가하는 사람 나름이니까…. 나는 나일뿐, 누가 어떤 평가를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롯데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다면.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부회장이 됐다. 그때부터 연구했던 게 자금시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떻게 주력기업을 상장할 것인가였다. 기업을 공개한다는 것은 우리 그룹 안이 아닌 외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는 의미가 있다. 그때까지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 문제가 있는 게 될 수도 있다. 합리적인 결정을 했는지 안 했는지 소액주주까지 다 들여다 보고 있다. 주력 기업(롯데쇼핑)을 공개하고 상장한 것이 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1988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했으니 신격호 회장으로부터 사실상 2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는 셈이다. 신 회장으로부터 배운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무엇인가.
"여러가지 있지만 '교만하면 안 된다'는 게 가장 크다. 어느 정도 성과가 났을 때 약간이라도 자랑을 하면 가장 많이 혼 난다. 사람이 교만하면 안 되듯, 회사도 경영 성적이 좋을 때 교만을 부릴 때 가장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호남석유화학이 예전에 일본 미쓰이와 공동경영을 하다가 미쓰이가 빠져나간 후 경영상 약간의 위기를 겪었지만 상장을 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 현대석유화학을 M&A해서 회사를 키워나갔던 게 많은 공부가 됐다. 그런 과정에서 모두 회장님의 겸손하라, 교만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많은 힘이 됐다."

―신 회장께서는 롯데쇼핑 상장에 반대하지 않았나.
"(웃으며) 처음엔 그랬다. 꾸준히 설득했고 다행히 회장님이 이해해 주셔서 자금을 확보해 여러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다. 롯데쇼핑을 상장하지 않았다면 롯데그룹이 오늘날처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신 회장을 어떤 논리로 설득시켰나.
"당시 롯데쇼핑의 매출이 5조가 되지 않았는데 차입금이 2조8000억 원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 백화점 매출이 줄어들고 있었고, 한국 백화점 사업의 전망도 불투명해 뭔가 미래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료를 만들어 꾸준히 설명을 드렸다. 자금도 자금이지만 상장을 하면 의사결정 자체에 대해 좀더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회사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신 부회장은 '비전 2018'을 발표하면서 2018년 그룹 매출을 지금의 네 배인 200조원으로 끌어올리고,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을 30%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롯데는 유통, 식품, 호텔 등이 주력인 전형적인 내수기업이다. 이런 내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 아닌가.
"어렵지 않다. 영국의 테스코나 프랑스 까르푸, 미국 월마트, 일본 이토요카도 등은 모두 유통 중심이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이, 직원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우리나라는 완전 포화는 아니지만 백화점, 대형마트 모두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내수 시장 자체가 우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해외 진출 문제가 그리 절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와는 다르다."

―신 부회장은 '비전 2018'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존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핵심사업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하고 있는 사업들이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핵심사업이라고 할 수 있나.
"식품 사업을 예로 들면 껌, 초콜릿 등을 파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해외에 공장을 가지고 나가는 플랜트 사업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세계적인 식품회사인 코카콜라, 펩시, 네슬레 등은 모두 플랜트 사업을 통해 큰 성장을 이뤄낸 회사들이다. 유통산업과 호텔 등 관광산업은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 높은 브랜드 가치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런 산업은 서비스업인 동시에 지식산업이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사업 구조는 잘 돼 있다고 보나.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나 보강해야 할 사업부문은 없나.
"유통·서비스, 식품, 금융, 석유화학 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군으로 비교적 포트폴리오가 잘 짜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은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롯데의 대표업종이 필요한 정도의 금융회사도 가지고 있고…. 기존 사업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산업이라면 진출하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사업은 하지 않겠다. 예를 들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조선산업에 진출하지 않겠느냐, 철강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우리는 아무런 경험도 없고, 잘 모르는 산업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철강산업은 신격호 회장께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포스코의 설계도를 처음 그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랬는데 대표적인 기간 산업인 철강산업은 국가가 직접해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못하게 되셨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호텔을 짓게 됐다. 아버지께서는 앉아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호텔산업도 수출산업이요,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산업이라고 생각하신다. 지금 롯데가 해외에 활발하게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흐뭇하게 생각하실 것이다."

―롯데는 재계 5위의 대기업이지만 삼성·현대 등에 비해 국가경제에 별 기여를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제조업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유통, 금융, 관광 같은 산업은 반도체 같은 투자는 엄청나지만 고용효과는 떨어지는 산업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경기도 화성에 추진하고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 같은 경우는 10만 명 가량을 고용하게 돼 있다. 롯데가 국가경제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예전 성장 위주의 경제구조만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GM이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코카콜라 같은 회사가 미국 경제에 더 많이 기여하고 있다."

―평소에 M&A 대상 물건을 리스트업 해놓고 항상 연구하나.
"기본적으로 기존 사업 강화차원에서 계속 검토하고는 있지만 리스트를 만들어 두지는 않는다. 매각 대상 기업을 우리가 꼭 사기 위해 경쟁한다기보다 그 기업을 가져가서 소비자에게 좋은 가치를 줄 수 있는 회사가 가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잠실 제2롯데월드 사업이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속도를 내는 것 같았지만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어떻게 되고 있나.
"허가가 빨리 낫으면 한다. 이미 굴착공사는 시작됐지만 이런 사업일수록 시간이 중요한데 인·허가가 늦어져 걱정이다."

―123층으로 건설될 제2롯데월드는 경제성이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신격호 회장을 빼놓고는 롯데그룹 내에도 건립에 흔쾌히 동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내가 회장님게 한번 다른 안을 올렸다가 혼 난 적이 있다. 고층 빌딩의 수익률이 안 좋고 123층으로 지으면 채산성이 낮다고 말씀 드리고 다른 방안을 올렸는데 화를 많이 내셨다. 대한민국 수도에 그런 것이 있어야 위상이 높아지고 관광수입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롯데의 브랜드 가치도 크게 올라간다고 말씀하셨다."

―건의를 했던 다른 방안은 어떤 것이었나.
"123층보다 수익성이 더 좋은 쪽 아니었겠나(웃음). 60층짜리 호텔, 오피스빌딩 등으로 줄여서 짓는 게 채산성은 더 낫다는 얘기였다. 회장님은 초고층 빌딩 건립을 20년 넘게 일관되게 주장해 오셨고, 제가 그때 그런 건의를 드렸다가 혼이 난 후 깨달은 건, '기업경영에는 숫자 말고 숫자 외적인 요인이 훨씬 큰 게 있다'는 것이었다. 즉, 숫자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브랜드 가치 같은 숫자 외적인 이익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초고층 빌딩을 지어야 한다는 것에 마지 못해 따라가는 게 아니라 완전히 수긍하게 됐나.
"물론이다. 모스크바에 롯데호텔을 그저께(15일) 오픈했는데 2~3년 전만 해도 모스크바 시민 중에 롯데를 아는 사람은 17%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2007년 9월에 백화점을 열었을 때에도 처음에는 롯데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장사가 잘 안 돼 고생했다.

그런데 호텔이 문을 열면서 모스크바 시민의 90%가 롯데를 알게 됐다. 그것도 고급 브랜드로 인식하게 됐다. 모스크바 그 자리에 채산성만 따진다면 호텔을 짓는 것보다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게 훨씬 더 나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브랜드를 키우는 것, 브랜드 산업으로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9월 13일 러시아 칼루가 주에 롯데제과 공장이 준공되는데 롯데제과도 그런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제과사업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모스크바 롯데호텔은 출발부터 성공적인 것이고 제2롯데월드 역시 국익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롯데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제2롯데월드에는 어느 정도의 자금이 투입돼야 하나, 자금 동원 계획은 잘 짜여 있나?
"건물 짓는 데 1조 7000억 원, 전체 2조 7000억원 정도가 투입될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금뿐 아니라 여러 상황이 바뀌게 돼 애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저층부 상품구성(MD)을 오랜 기간 연구해 3년 전에 끝내놨는데 시간이 3년 이상 지나니 그것도 바꿔야 할 상황이 됐다.
유통은 바뀌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그리고 바뀌는 여러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3년 전 계획은 이제 소용 없게 된 것이다. 유통업은 그래서 지식산업이다."

―그렇긴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비판받을 소지 역시 많은 게 사실이다. 처음 서울시 체비지로 시작한 땅이고, 성남공항이 나중에 생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어서 초고층은 어렵다고 한 땅이었다.
"법적으로 안 되게 돼 있는 곳은 아니었다. 또 회장님의 진심을 안다면 그런 비판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123층에 반대해서 신 회장께 혼났다고 했는데 자주 혼 나나.
"하하하. 가끔 야단 맞을 때 있다."

―혼 내시면 심하게 혼 내시나.
"하하하, 그냥 보통이다."

―롯데가 예전의 보수적인 모습을 벗고, 빠른 결정, 공격적인 경영으로 변신했다, 혹은 롯데의 DNA가 바뀌었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럴 때 신 회장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
"좋아하신다(웃음). 그게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라 회장님이 하신 일 아닌가."

사진=런던 김덕한 기자 ducky@chosun.com

―신격호 회장은 한국 재계의 대표적인 입지전적 기업인이다. 차관에 의존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던 시기에 일본에서 자본을 들여와 한국 기업을 키웠다. 그렇지만 역시 내수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면이 있다. 다른 대기업 창업주에 비해 제대로 알려진 면도 크게 부족하다. 신회장의 업적, 경영관 등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나.

"시작하고 있다. 경기도 오산에 그룹 연수원(롯데인재개발원)이 있는데 거기에 그룹의 역사와 상징적인 경영철학, 경영관을 공부할 있는 기념관을 짓고 있다. 회장님의 허락도 받았고 연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신입사원을 비롯한 직원들이 거기에서 공부를 하고 그룹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할 것이다."

―기념관의 콘텐츠는 어떻게 채울 것인가.
"롯데라는 사명(社名)이 젊은 시절 문학에 심취했던 회장님께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왔다는 걸 잘 모르는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본 사람도 몇 명이나 되겠나. 그런 기업의 역사, 회장님의 경영 철학, 창업 정신, 창업기 롯데제과 제품과 광고 등을 담으려 한다."

―신 회장께서는 언론에도 잘 안 나오지만 회고록 같은 기록을 남겨야 할 시간도 훨씬 지났다. '신격호 회고록'은 준비하지 않나.
"회고록까지는 아니고 언행록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롯데가 사람들은 너무 자신을 알리지 않는 것 같다.
"검소하게 살아라, 겸손하라, 떠벌이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늘 받고 자랐다. 실적이 좋아도 좋다고 선전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래서 좋은 면도 있지만 주가가 저평가되는 등 나쁜 면도 있다. 지금껏 실적이 좋았고, 올 1분기도 아주 좋았다. 하하하...이런 거 쓰지 마라."

―우동, 김밥 같이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별다른 취미도 없이, 야구 보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다. 무슨 재미로 사나.
"지금껏 그런 거 신경 쓰지 못했다. 이제부터 무슨 재미로 살지 궁리를 해볼까…(웃음)"

―골프도 안 치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장이 너무 많고 일본에 가족들이 있으니 약속 잡기가 쉽지 않다."

―골프 실력은.
"형편 없다. (싱글 핸디캡퍼인 노병용 롯데마트 대표, 황각규 정책본부 부사장을 가리키면서) 이분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

―일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는 무엇을 주로 하나.
"딱히 특별한 건 없다. 같이 식사하고 얘기하고…."

―처음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한국 롯데 경영에 참여했는데 한국에 처음 올 때 기분은 어땠나.
"회장님처럼 셔틀 경영을 하게 되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이 한국에 있게 됐고, 이제 한국에서만 경영활동을 하게 됐다."

―지금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보다 훨씬 크다. 매출 기준으로는 한국롯데가 일본롯데의 10배 이상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님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은 한국 롯데를 경영하고 싶어하지 않나.
"이미 오래 전에 회장님이 한국과 일본 경영을 나눠줬으니 형님이 그런 말씀은 하지 않는다."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후계 구도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언제쯤 그렇게 나눠주셨나.
"어느 시점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정해지게 됐다."

―지금까지 롯데의 후계 구도에 대해 많은 사람이 궁금해 했다. 현실적으로 경영은 신동빈 부회장이 한국, 신동주 부회장이 일본을 맡아왔지만 지분까지 그렇게 나눠져 있나.
"그렇다."

―롯데쇼핑을 비롯한 한국 회사들의 지분은 약간 많지만 롯데그룹의 준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대주주는 일본롯데홀딩스다. 그런데 일본롯데홀딩스의 지분은 외부에 일체 공개돼 있지 않다. 만약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을 신동주 부회장이 많이 가지고 있다면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저도 일본 롯데의 지분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다. 형님이 약간 많긴 하지만…. 그때문에 후계구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왜 회장께서 처음에 한국롯데를 작은아들에게 맡기려 했을까. 신동빈 부회장은 결혼도 일본 유력가의 따님과 했고, 신동주 부회장은 한국 교포와 결혼을 했는데….
"밖에서는 어떻게 봤는지 모르지만 결혼과 후계 구도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당시에는 일본 롯데가 더 컸다."

―그렇다면 일본보다 한국롯데가 경영을 더 잘해서 성장을 많이 한 것인가.
"(웃으며) 노코멘트! 일본의 경제성장 자체가 너무 둔화됐었다. 도요타 같은 수출기업은 성장했지만 해외에 나가지 않고 내수에 집중한 일본 기업은 성장할 기회가 제한됐다고 봐야 한다. 나는 성격상 지키는 것보다 공격하는 게 더 좋다. 형님은 반대로 오펜스(offence)보다 디펜스(defence)를 더 잘 한다.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성격의 차이다."

―일본 롯데와 사업상 경쟁해야 하는 경우는 없나.
"그런 건 별로 없다. 그런데 밖에서 착각하는 경우는 좀 있다. 얼마전 폴란드의 제과 회사를 우리가 인수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아니라 일본 롯데가 추진하는 일이었다.(웃음)"

―다른 그룹 경영인들과도 많이 만나나.
"전경련 부회장 등을 맡고 있으니 한국에 있으면 많이 만나고 대화하고 한다."

―롯데와 함께 대표적인 유통기업인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과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 등과도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주 만나고 개인적으로 관계도 다 좋다. 물론 사업에 있어서는 라이벌이지만…."

―2018년 롯데는 어떻게 돼 있을 것이다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정통 글로벌 기업! 삼성 같은 회사가 해외에서 인정받는 브랜드가 됐듯이 우리도 밖에 나가 브랜드를 키우겠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늘 어렵다. 예상 외의 일도 생기고.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경영자로서의 꿈은. 어떤 경영자가 되고 싶나.
"2018년 200조 매출이란 목표를 제시했지만 우리가 사업을 하는 것은 소비자의 생활의 질을 높이고, 그런 면에서 여러가지 사회에 공헌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잘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