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

24일 오전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덕산업단지의 한 건물 2층. 휠체어에 앉아 있던 김승환 선수가 외치자 흰 티셔츠를 맞춰 입은 엔젤로보틱스(455900) 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김승환 선수가 휠체어 앞의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로봇 ‘워크온슈트 F1(WalkON Suit F1)’에 발을 집어넣자 슈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승환 선수는 슈트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고, 로봇에서 ‘시작’이라는 알림음이 나오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김승환 선수는 “사고로 장애인이 됐는데 이렇게 두 발로 서서 비장애인과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27일 열리는 사이배슬론 2024에 출전하는 김승환 선수가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덕산업단지에서 열린 공개 훈련에서 공경철 KAIST 교수 겸 엔젤로보틱스 의장이 개발한 '워크온슈트 F1'을 입고 걷고 있다./KAIST

김승환 선수는 오는 27일 열리는 사이배슬론(Cybathlon) 2024 대회에서 웨어러블 로봇 기술을 겨루는 외골격 로봇 부문에 출전한다. 4년 마다 스위스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사이배슬론은 신체 장애를 로봇 기술로 극복하는 대회다. 엔젤로보틱스는 스위스에 직접 가는 대신 대전에 마련된 사이배슬론 아시아 허브 경기장에서 대회에 참가한다.

엔젤로보틱스와 KAIST 공경철 교수 연구팀은 2015년부터 하반신마비 장애인용 웨어러블 로봇인 워크온슈트를 개발했고, 2020년 대회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공 교수는 2020년 대회에 참가했던 ‘워크온슈트4′를 더욱 발전시켜서 ‘워크온슈트 F1′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4년 전과 달라진 건 하반신마비 환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슈트를 착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워크온슈트4를 포함해 기존 웨어러블 로봇은 착용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워크온슈트 F1은 전면 착용 방식을 택해 착용자가 휠체어에 탄 채로 슈트를 입을 수 있다. 영화 아이언맨처럼 로봇이 착용자에게 스스로 다가오는 기술도 구현했다.

연구를 이끈 박정수 팀장은 “장애인이 이 로봇을 일상에서 쓸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입을 수 있어야 한다”며 “로봇을 혼자서 입을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잡고, 착용자의 손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워크온슈트 F1의 형상과 주요 제원./KAIST

보행 속도는 시속 3.2㎞로 비장애인의 보행 속도와 비슷하다. 보행 속도 자체는 2020년 기술과 비슷한데 대신 구동기를 늘려서 로봇의 힘을 높이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자세 제어와 균형 제어를 강화했다. 워크온슈트 F1에는 12개의 구동기가 들어가서 비장애인이 걸을 때와 비슷한 힘을 낼 수 있다. 이외에 로봇의 핵심부품인 모터와 감속기, 모터드라이버, 메인 회로 등을 전부 국산화했으며, 모터와 감속기 모듈의 출력밀도는 기존 연구팀의 기술에 비해 약 2배 강화했다.

공 교수는 “워크온슈트는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기술의 결정체”라며 “워크온슈트에서 파생된 수많은 부품, 제어, 모듈 기술들이 웨어러블 로봇 산업 전체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엔젤로보틱스와 공 교수 연구팀은 27일 열리는 사이배슬론 2024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노린다. 이번 대회는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6개에서 10개로 늘었고, 임무의 난이도도 대폭 높아졌다. 대회에 도전장을 던진 16개 팀 가운데 9개 팀이 중도 포기했을 정도다. 박정수 팀장은 “이미 지난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만큼 이번 대회에서는 순위 경쟁보다는 기술적 초격차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워크온슈트 F1 개발진. 왼쪽부터 공경철 KAIST 교수, 김승환 선수, 박정수 팀장./KAIST

워크온슈트 F1은 사이배슬론 대회를 위해 만든 로봇이기 때문에 상용화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워크온슈트 F1을 개발하면서 얻은 기술을 엔젤로보틱스의 주력 제품인 재활치료용 엔젤 메디나 산업용 제품인 엔젤 슈트, 엔젤 기어 등에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공 교수는 “웨어러블 로봇은 환자를 돕는 목적도 있지만, 사람의 힘이나 동작을 측정하면서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장치기도 하다”며 “궁극적으로 무인화 기술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웨어러블 로봇 기술이 중간 기착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경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 겸 엔젤로보틱스 의장이 개발한 하반신 마비 장애인용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슈트 F1 (WalkON Suit F1). 실제 하반신마비 장애인인 김승환씨가 워크온슈트 F1을 입고 걷고 있다./이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