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우주 탐사와 개발을 주도하던 저효율의 우주개발은 끝이 나고 있다.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사업가와 투자가들이 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우주산업 규모가 2020년 3850억달러에서 2040년에는 1조1000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 20년 사이 3배가 커진다. 모험적 IT투자로 성공한 투자가들이 재사용 로켓을 처음으로 제시한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같은 혁신적 민간 기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진 덕분이다. 한국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글로벌 우주산업 시장점유율이 1%에 불과하다. 바꿔서 말하면 99%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이다. 조선비즈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를 바라보는 혁신가들을 만났다. 전 세계를 상대로 우주 상품을 파는 창업가들과 기업가들이다.[편집자주]

지난달 2일 국내 우주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에 합류한 서성현 대표는 자동차와 로켓을 아우르는 ‘엔진 전문가’다. 서 대표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연소 불안정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대차(005380) 파워트레인연구소에서 가솔린엔진 ‘V6′를 개발했다. 이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들어가 누리호의 전신인 터보 펌프식 30t급 엔진의 핵심부품 연소기와 가스발생기를 개발했다.

한밭대 기계공학과 교수까지 거친 그는 우주산업 분야에서 산·학·연을 모두 거친 드문 케이스다. 이런 전문가가 선택한 길이 ‘스타트업’이니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인지 궁금증이 앞섰다.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의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서울지사에서 서 대표를 직접 만났다.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왜 스타트업인지. 서 대표는 “돈과 시간문제이긴 하지만, 현재 추세로 보면 우주 산업은 결국 도래할 수밖에 없다”며 “세계 패권이 기술에서 나온다고 본다면 한국에서도 우주 산업이 창출하는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성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지난달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에 엔진 개발 부문 대표로 합류했다.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래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에서 고문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직원들과 소통하는 내부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또 발사체 개발 일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최대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서 원하는 기술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산학연을 모두 거쳤다. 스타트업의 개발 환경은 어떤가.

“스타트업은 제품을 빨리 만들어 상용화하고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제품에 드는 비용과 효용 가치를 고민하게 된다. 학교와 연구소보다 기능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최근엔 많은 투자자가 관심을 보이고 있고, 한국의 투자 환경이나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돈은 모자란다. 한계 내에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우주 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한국에서 투자를 받아서 발사체 사업을 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우주 산업은 사적 영역이라고 해도 국가적으로는 전략자산이 될 수 있다. 국가 예산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미국이 우주 개발에 돈을 쓰는 이유도 결국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선구적으로 우주 산업에 뛰어든 만큼, 우리가 성공해야 한국 우주 산업이 꽃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름의 부담도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 중인 메테인 우주 발사체 '블루웨일-1(BW-1)'.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연말 제주 해상에서 자체 개발한 로켓 ‘블루웨일-1(BW-1)’의 상단을 발사할 계획이다. 2단으로 구성된 BW-1은 고도 500㎞에 150~170㎏의 위성을 올릴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높이 21m, 추력 260t의 소형발사체로 액화천연가스(LNG)와 액체산소를 연료로 사용한다.

–올해 연말 BW-1 상단을 발사한다. 해상 발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가장 큰 것은 안전 문제다. 공간을 확보하면서 발사대를 구축하는 게 어려워 해안가로부터 떨어져 발사하겠다는 취지다. 물론 정부에서 마련하는 민간 발사장이 발사체 개발 일정과 맞아떨어지면 안 쓸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해상 발사도 관심 두고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위성도 지구 중력장을 벗어나기 위해선 적도 근처에서 발사하는 게 가장 좋다. 해상 발사로 발사체를 끌고 나가면 제약에서 자유로운 부분들이 있다.”

–1단 엔진이 아닌 BW-1 상단부터 발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올해 연말에 시험 발사하는 엔진은 터보 펌프 방식이 아닌 가압 방식이다. 가압식 엔진은 추진제 탱크에 압력을 가해 연소하는 방식인데, 기술적 허들이 낮다. 궁극적으로는 터보 펌프 방식을 쓰겠지만, 가압식 엔진으로 먼저 발사하는 이유는 전체적인 발사 운용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경험을 쌓아 향후 1단과 2단을 합쳤을 때 원활하게 운용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발사는 단순히 이륙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로켓을 기립하고 추진제를 공급하는 과정이 모두 중요하다.”

–BW-1의 개발 상황을 설명해달라.

“로켓 엔진의 주요 핵심부품은 연소기와 가스발생기, 터보 펌프 세 가지다. 현재 이 부품들은 각각 단품 단계에서 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밸브와 추진제 탱크, 텔레메리트(원격자료 수신 장비), 추적소 관련 기술을 확보 중이다. 대부분 개발이 상당히 진척된 상황이고, 올해 말에는 엔진 시험을 할 계획이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해상 발사를 위해 건조 중인 '세테시아-1(Cetacea-1)'.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발사는 민간 최초로 건조 중인 해상발사대 ‘세테시아-1(Cetacea-1)’에서 이뤄진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나로우주센터 민간 발사장 설립 지연과 안전한 발사를 고려해 해상 발사를 선택했다. 향후에는 민간 발사장과 해상발사대를 동시에 활용해 발사 횟수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올해 해상 발사를 시작으로 내년 말이나 2025년 초에는 상업발사를 시작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 서비스 외에도 확보한 기술을 스핀오프(Spin-off) 하는 사업도 고려 중이다. 또 재사용 발사체와 바이오메탄 연료 개발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전통적인 발사 서비스 외에도 다른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서 대표의 설명이다.

서성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지난달 17일 서울 사무소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내년 말이나 2025년에는 상업발사에 나선다.

“상업발사 시기를 공격적으로 잡았다. 1년에 10~12번은 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사 비용은 아직 산정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확보해야 하고, 부품 규격을 통일하거나 부품 수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또 누군가는 메탄에 여전히 탄소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오 기술을 활용한 연료 개발도 기회가 되면 추진할 계획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신뢰성 확보다. 발사체를 처음 만들면 타고 싶은 손님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발사체를 만들어도 한 번 성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많이 발사해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

–해상발사대를 구축 중이다. 선박은 어느 정도 건조됐나.

“올해 7월에 진수식을 열 예정이다. 지금은 70~80% 건조됐다고 보면 된다. 회사에 총 50명 정도의 엔지니어들이 있는데, 해상발사대가 구축되면 엔지니어들과 발사 운용을 해봐야 한다. 해상발사대 면적은 축구장 6분의 1(약 3446㎡) 정도다. 우리가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다른 기업들에게도 해상 발사가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육지 발사보다 경제적 이득이 있는지 많이 따져봐야 한다.”

–소형발사체가 시장성이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확실히 경쟁이 격화됐다. 소형 위성의 수요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데, 국내 기업들이 갖고 있는 제한성이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기업도 양산 체계를 밟고 있고, 발사체 기업도 개발에 성공하면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경쟁력 있는 발사체를 내놓느냐가 중요하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발사체 개발로 우주 운송 시스템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게 첫 번째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에서 습득하는 개발 기술을 활용해 스핀오프 해야 한다. 개발 중인 탄소섬유 탱크나, 엔진 제작 기술을 활용해 방산 분야에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 중이다. 발사체 제어 기술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발사체가 근본이자 출발점이긴 하지만,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