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원자로 운전, 원전 최초 부지 선정, 소형 원자로 개발까지. 지난 60여 년간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의 태동부터 기술 자립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이끈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지난 6일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국 원자력의 아버지'이자, 분단으로 정든 고향을 등진 실향민이기도 했다. 북파 첩보 부대 '켈로(KLO)'에서 활약했고, 평생 헤어진 전우를 그리워했다.
고인은 193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 자리잡았다. 배재고를 거쳐 1949년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1년 만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피란길에 굶주리던 그를 딱하게 여긴 한 선배가 켈로 부대 입대를 권했다. 미군이 북한 지역의 정보 수집과 게릴라전을 위해 이북 출신 청년을 모아 만든 비정규 부대였다.
북한에 침투한 대원들의 전문을 받아 해독하고, 지시를 다시 암호로 보내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침투 작전에 필요한 장비와 쾌속정 설계 등을 교수와 기술자들에게 의뢰하는 일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동료를 잃었다. 고인은 생전 "휴전 직전 북으로 들어간 일부 대원이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일이 평생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고 회고했다.
원자력과의 인연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1953년, 휴전 후 복학한 그를 한 대학 선배가 "공부 좀 하자"며 이끌었다. 창고 한쪽에서 영어 원서 한 권을 돌려보며 원자력 기술을 공부하는 이들을 만났다. 한 권뿐인 책을 막내였던 그가 밤새 타이핑해 여러 부로 옮겼다. '뉴클리어 스터디 그룹'으로 이름 붙인 이 모임의 연구자들은 훗날 원자력법 제정과 원자력연구소(원자력연구원의 전신) 설립의 주역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남짓한 시절이었지만, 이승만 정부는 '원자력 인재를 키우겠다'며 1인당 6000달러의 국비를 들여 해외 유학을 시켰다. 고인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59년,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산하 국제원자력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그에게 '긴급 훈령'이 떨어졌다. 미국의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 운전 면허를 취득해 오라는 것이었다.
국내 첫 원자로로 이 원자로를 들여오기로 했는데, 정작 이를 운전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급히 귀국을 연기하고 시험 준비에 몰두해 원자로 운전면허를 한국 최초로 땄다. 그는 평소 "당시 정부가 해외 파견 연구관들에게 들인 비용이 각자의 몸무게만큼의 금값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금 선생'이라고 불렀다"며 "나는 내 몸을 태워 '금 선생들'에게 온기와 빛을 전하는 '평범한 나무'라는 다짐과 각오로 일했다"고 했다.
1962년 그의 손에서 가동을 시작한 트리가 마크-2는 수백 명의 원자력 전문가를 길러내며 한국 원전 기술의 산실이 됐다. 1969년엔 세계 최초로 이 원자로의 출력을 100㎾에서 250㎾로 높이는 데 성공, 큰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첫 원전 부지를 찾는 일도 고인의 몫이었다. 전국 해안을 샅샅이 돌며 지질과 기상, 용수 등 입지가 최적인 곳을 찾아다녔다. 사투리 때문에 간첩으로 오해받아 매를 맞는 등,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곳이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다. 고리 1호기가 1978년 상업 운전에 들어가면서 한국은 세계 21번째 '원자력 발전국'의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이후 한국원자력학회장, 한국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집행위원장, 원자력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원전 기술 발전을 이끌었다. 발전소 설계와 제작, 건설, 운전, 폐로까지 아우르는 국내 원전 산업 표준화의 기틀을 닦았고, 한국이 자체 개발한 첫 소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 기술 고도화에 기여해 한국 원전의 해외 진출 기반을 넓혔다. 2017년 우리 정부의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됐고, 홍조근정훈장, 3·1문화상도 받았다.
2009년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4기를 수주해 처음으로 상업용 원전 수출에 성공하자, 고인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 앞에서 "미국에 보낸 국비 유학생들이 오늘의 원전 수출로 이어졌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앞에선 "중동 사막에 무궁화 나무 4그루(원자로 4기)를 심었다"고 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당 안팎의 반대에도 원전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혀 원자력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유족으로는 자녀 이혜일·이지혜·이인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8일 오전 9시 30분. (02)2258-5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