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길에도 숨은 지름길이 있다. 가장 짧은 거리로 곧장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달의 중력을 이용해 연료를 아끼는 궤도를 따라가면 된다.
최근 국제 연구진이 컴퓨터로 수천만 개의 달 이동 경로를 분석한 끝에, 기존보다 연료를 덜 쓰면서도 지구와의 통신이 끊기지 않는 새로운 달 항로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중력을 활용한 궤도 설계만으로도 달 탐사 비용을 낮출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중력이 만든 '숨은 항로' 따라 달에 간다
달까지 가는 경로는 어떻게 찾을까. 우선 연구자들은 지구와 달의 위치, 속도, 중력, 우주선의 출발 조건을 수학식으로 바꾼다. 그런 다음 우주선이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속도를 내면 어떤 궤도로 가는지 컴퓨터로 반복 계산한다. 출발 각도나 속도를 조금만 바꿔도 우주선의 경로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임무를 설계할 때는 수많은 후보 경로를 계산한 뒤, 그중 연료를 적게 쓰면서도 안전성과 통신 조건, 임무 일정을 만족하는 길을 고른다.
이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델타-v'다. 델타-v는 우주선이 임무 도중 궤도나 방향을 바꾸는 데 필요한 속도 변화량을 뜻한다. 델타-v가 작을수록 필요한 추진제가 줄어들고, 그만큼 발사 비용을 낮추거나 탑재 여유를 늘릴 수 있다.
특히 우주선은 일종의 공짜 추진력인 '중력'을 이용해 움직인다. 과학계에서는 중력의 흐름을 따라 우주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태양계에는 이런 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데, 이를 '행성 간 수송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구와 달 사이에도 중력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길이 있다. 특히 두 천체의 중력이 맞물리는 특정 지점 주변에서는 우주선이 비교적 적은 에너지로 궤도에 머물거나 다른 궤도로 옮겨갈 수 있다. 달 탐사 경로를 설계할 때 과학자들이 단순한 직선 항로가 아니라 복잡한 곡선 궤도를 계산하는 이유다.
◇ 3000만번 계산 끝에 찾았다… 달까지 가는 '더 싼 길'
포르투갈 코임브라대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진은 '함수 연결 이론'이라는 수학적 방법을 활용해 지구-달 경로를 계산했다. 함수 연결 이론은 복잡한 궤도 계산에 드는 컴퓨터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약 3000만개의 지구-달 이동 경로를 시뮬레이션했다.
연구진이 찾아낸 핵심은 기존의 직관을 뒤집는 데 있었다. 기존 모델들은 우주선이 지구에서 출발하면, 지구에 가까운 쪽에서 목표 궤도로 바로 들어가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속도로에 올라탈 때 가까운 진입로를 택하는 것이 쉬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계산 결과, 우주선이 먼저 달 가까이 접근해 달의 중력으로 속도와 방향을 바꾼 뒤, 목표 궤도에 합류하는 방식이 오히려 델타-v를 줄였다. 겉으로는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중력의 흐름을 더 잘 타는 길이 더 경제적이었던 셈이다.
새 경로는 기존에 알려진 가장 경제적인 달 항로보다 델타-v를 초속 58.80m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또 이 경로가 지구와의 통신을 유지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우주선이 달 뒤편으로 들어가면 지구와의 직접 통신이 끊길 수 있는데, 새 궤도는 이런 통신 공백을 피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다만 이번 계산은 지구와 달의 중력만 고려했다"며 "앞으로 태양의 중력 등 더 많은 변수를 넣으면 더 효율적인 경로가 나올 수도 있다. 이번에 활용한 분석 방법은 앞으로 더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Astrodynamics(2026), DOI: https://doi.org/10.1007/s42064-025-0297-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