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직원이 재직 당시 담당하던 업무와 사실상 동일한 분야의 창업기업을 세운 뒤, 항우연으로부터 400억원이 넘는 계약을 따낸 사실이 감사에서 확인됐다.
18일 우주항공청이 공개한 항우연 종합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항우연 전 직원 A씨는 2018년부터 자신이 설립한 창업기업과 이후 인수한 기업을 통해 항우연과 총 66건, 401억6000만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2018년 항우연에 재직 중이던 당시 본인이 맡고 있던 업무를 사업 영역으로 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2019년 창업 휴직에 들어갔고, 휴직 중이던 2020년에는 자신이 속했던 부서와 위성 관제 업무를 수행하던 용역업체를 인수해 창업기업의 자회사로 편입했다. A씨는 해당 기업 대표에도 취임했다.
감사 결과, A씨 관련 기업이 따낸 계약은 사실상 A씨가 항우연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외부 기업에 맡기는 구조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66건 가운데 9건을 제외한 대부분은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특히 A씨 창업기업이 수행한 저궤도 위성 주파수 관련 용역 20건은 다른 입찰자가 없는 형태로 진행됐다.
계약 대부분은 A씨가 항우연에 재직 중이거나 창업 휴직 상태였던 기간에 체결됐다. A씨가 퇴직한 뒤에도 관련 기업과 항우연 사이에는 8건의 계약이 추가로 이뤄졌다.
문제는 이 같은 창업 형태가 당시 항우연이 속해 있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가이드라인과 항우연 창업지원규정에서 금지한 유형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재직 중 맡던 업무를 외주화하는 방식의 창업은 제한 대상이었지만, 항우연은 A씨의 창업 휴직을 승인했다.
수의계약 과정에서도 규정 위반 소지가 드러났다. 항우연에는 임직원이 직무관련자와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하는 수의계약 금지 규정이 있었지만, 항우연은 2022년 규정 개정 전까지 A씨 관련 기업과 128억원 규모의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조사됐다.
계약 업무에 관여한 연구원 상당수는 A씨의 선임자나 후임자 등 직접적인 업무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감사 보고서는 이들이 입찰 제안서 평가 항목을 신생 기업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업체가 불공정성을 제기했지만 항우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해당 업체는 특정 기업을 밀어주는 계약이라고 판단해 입찰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역시 인수한 용역업체와의 관계를 항우연에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창업 지원 혜택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항우연 내부 직원들로부터 미공개 계약 정보를 사전에 전달받고, 관련 직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정황도 감사에서 확인됐다.
A씨는 국내에 해당 기술을 보유한 전문기업이 없어 창업 지원 대상에 적합했으며, 인수 기업에 대해서도 휴직 연장 신청 당시 항우연에 알렸기 때문에 고의로 숨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주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주청은 A씨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하라고 항우연에 통보했다. 또 특혜성 계약을 만들고 미공개 정보를 제공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중징계를 요구했다. 창업 승인 업무를 담당한 직원에 대해서도 업무 태만 책임을 물어 징계를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