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안데스산맥에 서식하는 유리개구리. 제이미 컬레브러스의 작품./영국 자연사박물관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독자들을 위해 올해의 희망적인 과학 성과 5가지를 소개했다. 영아 전용 말라리아 치료제가 처음 승인됐고, 발기부전 치료제로 알려진 비아그라가 희귀 유전 질환 치료 후보로 떠올랐다. 버려지는 빵과 대추야자 폐기물은 새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다. 암 예방과 생존율에서도 진전이 있었고, 에콰도르 오지에서는 신종 생물 14종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알약 쪼개 먹이던 영아 말라리아, 전용 치료제 첫 승인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생후 초기 영아를 위한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메터-루메판트린' 사용을 승인했다. 체중 2~5㎏ 영아를 위해 별도로 만든 제형이다. 지금까지는 체중 5㎏ 이상 어린이용 약을 의료진이 쪼개 용량을 어림잡아 투여해야 했다. 용량이 맞지 않으면 치료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었다. 2024년 말라리아 사망자는 61만명이었는데, 이 중 아프리카 지역 사망자 4명 중 3명이 5세 미만 아동이었다. 이번 승인으로 유엔과 비정부기구(NGO) 등이 해당 치료제를 구매해 현장에 배포할 수 있게 됐다.

◇비아그라, 희귀 유전병 치료 후보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성분인 실데나필이 희귀 유전 질환 '리 증후군' 치료 가능성을 보였다. 미국과 유럽 연구진은 리 증후군 환자 줄기세포로 기존 약물 5600종을 시험한 끝에 실데나필을 후보 물질로 찾아냈다. 이후 9개월 영아부터 38세 성인까지 환자 6명에게 투여했더니, 대부분에서 운동 능력과 근력, 자가 호흡 기능이 개선됐다. 리 증후군은 신생아 4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하며, 상당수 환자가 3세 이전 호흡 부전으로 숨진다. 다만 실제 치료제로 쓰이려면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임상이 필요하다.

화이자사의 비아그라

◇폐빵과 대추야자, 친환경 연료가 되다

버려지는 식품과 농업 폐기물을 에너지로 바꾸는 연구도 나왔다. 영국 연구진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수소를 만드는 대장균을 이용해 수소 가스를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버려진 빵을 대장균의 먹이로 활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재자원화할 가능성도 보였다. 연구진 모델링에 따르면 이 방식은 화석연료 기반 공정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또 다른 연구팀은 대추야자 잎 부위의 마른 섬유를 가열해 바이오 연료에 쓰이는 탄화수소 분자 3종을 확인했다. 대추야자 폐기물을 태워 없애던 지역에서는 폐기물 처리 비용과 대기오염을 함께 줄일 대안이 될 수 있다.

◇남성 HPV 백신 접종, 암 위험 46% 낮춰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의 암 예방 효과가 남성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연구진이 9~26세 남성 102만명을 분석한 결과, HPV 백신을 맞은 남성은 식도암·두경부암·음경암·항문암 위험이 미접종자보다 46% 낮았다. HPV 백신은 여성의 자궁경부암 예방 효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남성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데이터가 추가된 것이다. 암 생존율도 개선되고 있다. 영국 암연구소는 2025년 영국 암 사망률이 사상 최저 수준이라고 밝혔다. 자궁경부암 사망자는 50년 전보다 75% 줄었다. 미국암학회도 2015~2021년 미국 암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이 처음으로 70%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에콰도르 오지서 신종 생물 14종 발견

새 생물종 발견도 이어졌다. 에콰도르 안데스산맥의 콘도르 산맥에서는 3주간의 탐사로 신종 생물 14종이 확인됐다. 이 중에는 몸길이 23㎜에 불과한 유리개구리도 포함됐다. 연구진은 이 개구리에 에콰도르 여성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역도 선수 네이시 다호메스의 이름을 붙였다. 대만에서는 다리가 없는 도마뱀 '도파시아 포르모센시스'가 중국에서 들어온 개체가 아니라 독립된 종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거의 100년 동안 이어져 온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연구진은 DNA 분석과 형태 비교로 대만 개체가 별개 종임을 밝혔다.

과학의 성과는 대개 조용히 쌓인다. 이번 성과들도 하나의 발견이 곧바로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영아용 말라리아 치료제처럼 이미 현장에 들어간 변화도 있고, 비아그라의 재활용처럼 기존 약물에서 새 가능성을 찾은 사례도 있다. 네이처는 "이런 성과들이 과학이 여전히 질병과 에너지, 생물다양성 문제를 풀어가는 도구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